“세례받은 후에도,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의 작품은 오로지 미와 세속의 기준만을 따랐습니다. 이제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예수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타인의 고통을 제 영혼에 새기면서 당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젊은 작가상 회화(영상) 부문 수상자 정자영 작가(가브리엘라·수원교구 제1대리구 상현동본당)는 이와 같이 작품 세계가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수상작인 <The Living Altar \ 살아있는 제대: 은총의 지형>도 가톨릭 전례와 신학적 의미를 현대 미디어 언어로 풀어내며, 예수 그리스도가 현시대 고통도 짊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지에서 공부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융복합 예술가인 정 작가는 14년 전 미국의 한 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 참례한 뒤 세례를 받았다.
‘미사’라는 의례에 온전히 감응하니, 신앙은 그에게 ‘선물’처럼 찾아왔다. 정 작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체험을 모두 주님의 ‘주권’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주님과 함께하는 일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면에서 쏟는 힘과 평안이 있다”며 “항상 곁에서 힘을 주다가 마지막 순간에 화룡점정(?龍點睛)처럼 영감을 선물해 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과의 우연한 만남은 정 작가의 작품 세계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유가족과 맞잡은 손에서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이들 안에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 뒤로 ‘고통’은 작업의 중요한 모티프가 됐다.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존재들 곁에 빛으로 있듯이, 정 작가 또한 세월호 유가족, 5·18 민주화운동 열사, 형제복지원 피해자 등을 조명하는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고통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이 내면의 고통을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의 고통까지도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성체 안에서 해처럼 모든 희망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길 바랍니다.”
정 작가의 목표는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을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정 작가는 “어떤 권세도, 죽음도, 삶도 우리와 갈라놓을 수 없는,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형상화하고 싶다”(로마 8,31-39 참조)며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행하신 일들을 우리의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이제 막 수원교구로 전입한 정 작가는 교구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해외 활동을 하다 귀국하니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뜨거운 신앙심을 갖고 있는 곳이 한국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상현동본당 신자들도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셔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구 안에서 예술이 주님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