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유입된 성경과 성화가 동아시아의 번역·수용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 토착화되고, 그 성과가 바티칸박물관 전시로까지 이어진 흐름을 되짚는 논의의 장이 열렸다.
교회미술연구소·교회미술학회는 2월 27일 숙명여자대학교 프라임관에서 ‘2026 교회미술의 현황과 전망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은 교회미술연구소·교회미술학회의 창립 기념 행사로, 교회미술의 과거를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교회가 어떤 시각언어로 신앙을 전할지 전망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기조강연에서 조광호 신부(시몬·인천교구 성사전담,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는 예술을 형식보다 의미와 맥락으로 읽는 오늘날, 교회미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짚었다. 조 신부는 한국 그리스도교 미술의 정체성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미술이 ‘고귀한 단순성(nobilis simplicitas)’을 지녀야 한다고 선언했다”며 “이는 종교적 소재나 장소 자체보다, 표현이 ‘현존하는 복음적 진리를 드러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징이 기호로 소비되지 않고 성사적 사건으로 살아 있을 때, 그리스도교 미술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박효은 동아시아미술과영성연구원 대표는 그리스도교와 성경이 동아시아에 전해짐에 따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교 미술이 형성되었는지를 풀어냈다. 발표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미술은 비단길(실크로드)을 통해 7세기부터 동아시아에 전해졌지만, 서학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달리 복음은 오랫 동안 거부되거나 박해 속에 머물렀다.
박 대표는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의 흔적은 맥락 없이 파편적으로 남아 깊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 “이러한 국면은 20세기부터 현지어로 성경이 번역되면서 다른 양상을 나타냈고, 그리스도교의 비약적 성장에 따라 교회미술 역시 성숙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에 따라 중국의 천위안두, 일본의 하세가와 로카는 각국 그리스도교 미술의 토착화를 주도하며 <성모자상> 등을 작업했으며, 한국에서는 월전(月田) 장우성이 <한국의 성모자상> 등을 통해 한국적인 성화의 모범을 제시했다”며 “복음을 접한 이들의 내면에 자라난 믿음이 현지의 언어로 아름답게 번역된 사례”라고 전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장우성(요셉, 1912~2005) 화백의 그리스도교 주제 회화를 통해 한국 교회미술의 토착화 사례를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장 화백이 한국화의 재료와 구성 속에서 성화를 주제로 풀어내며, 단순한 모방이나 장식이 아니라 ‘한국적 언어’로 성화가 자리 잡는 과정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특히 장 화백의 작업이 ‘수묵담채’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스케치와 초본 등 예비 단계를 통해 전통 회화에서 부족했던 시각적 사실성을 보완한 점을 짚었다. 그는 이를 통해 토착화가 서양 성화를 단순히 한국적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태도와 방법론의 선택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박수란 수녀(엘리사벳·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자료실 책임)는 2017년 바티칸박물관에서 개최된 특별전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을 통해 한국교회의 역사와 미술이 보편교회 무대에서 어떻게 소개됐는지를 다뤘다.
박 수녀는 전시 준비 과정과 구성, 전시가 만들어 낸 반향을 전하며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장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 색채를 나타내는 성모자화, 나전칠기 등을 통해 한국에 신앙이 뿌리내린 사회 배경과 인간 존엄성 실천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특별전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앙을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면서 “교회의 유물을 보존·관리하는 다양한 기관이 전시 공간을 통해 신앙 유산의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사목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심포지엄에서는 동남아시아로 확산된 천주교와 성당의 형성 과정도 함께 논의돼, 교회와 교회미술의 ‘공간’ 측면에서의 정치·사회적 문제의 함도 제기됐다.
교회미술연구소·교회미술학회 소장 박아림 교수(임마쿨라타 마리아·숙명여대 회화과)는 “그동안 교회미술은 개별 연구나 특정 분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역사적 고찰부터 현대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이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향후 연구자간의 활발한 학술적 교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산인 교회미술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