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부터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가 보존·관리해 온 ‘오성(五聖)바위’가 충남 아산의 원래 자리(음봉면 동천리 235-2)로 옮겨진다. 서울대교구는 3월 18일 대전교구와 협의를 거쳐 바위를 이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성바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루카), 장주기(요셉) 등 다섯 성인이 관헌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던 길, 그리고 서울에서 순교지인 충남 보령 갈매못 형장으로 끌려가던 때 잠시 쉬며 기도를 바치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다섯 성인이 처형을 앞두고 이 바위에서 기쁜 마음으로 성가를 부르고,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성바위의 절두산순교성지 이전 논의는 1972년 시작됐다.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오성바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충남 아산(당시 온양) 지역 평신도 조병식(프란치스코) 회장은 1972년 12월 바위의 원형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절두산으로 옮겨 줄 것을 당시 절두산 순교기념관장 박희봉 신부(이시도로, 1924~1988)에게 건의했다.
박 신부는 조 회장의 건의에 따라 동천리를 찾아 현장을 살피고 이전 가능성을 검토했다. 다만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몬시뇰(안드레아, 1922~2009)의 의견에 따라 이전을 보류됐고, 바위는 현지에서 보존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후 오성바위를 도량을 쌓는데 사용하려는 등 훼손 우려가 다시 커지자, 박 신부와 조 회장은 바위가 놓인 부지의 소유자와 동천리 이장, 음봉면장, 지역 유지들을 설득해 결국 이전을 성사시켰다.
무게 16톤에 이르는 바위를 서울까지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지자체와 경찰, 미군 제83병기대대의 협조를 얻아 1973년 4월 12일 이전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절두산순교성지는 풍화와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야외 전시관을 설치하는 등 오성바위 보존과 순교 영성 현양에 힘써 왔다.
서울대교구와 대전교구, 절두산순교성지는 많은 순례자가 찾는 성지에서 관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성인들의 발자취가 서린 역사성을 고려할 때 바위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지역 주민과의 소통은 물론 현지 순례자의 신심 고취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이전 시기와 방법은 향후 관계자 협의를 거쳐 정할 예정이다.
오성바위는 두께 1m, 너비 4m, 둘레 11m에 이르는 넓적한 모양이다. 한때 ‘복자바위’로 불렸으나, 다섯 성인이 1984년 시성된 이후 오성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