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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하느님은 전쟁을 거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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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4월 30일 ‘하느님은 전쟁을 거부하신다’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쟁에 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연대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성명서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무력 분쟁이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레오 14세 교황의 평화를 호소하는 행보에 동참해 모든 전쟁을 규탄하고, 평화를 선택할 것을 요청하고자 마련됐다.


성명서에서는 전쟁은 가장 힘없는 이들의 삶을 먼저 파괴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고통을 짊어지지 않음을 지적했다.


사제단은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참 생명과 참 평화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계신다”며 “전쟁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라,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의 길을 실제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선택하라는 하느님 뜻에 따라, 매일 오후 9시 한반도 평화와 미국·이스라엘 러시아 등의 침략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주모경 봉헌과 미사 중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존재를 기억할 것을 호소했다.


사제단은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결코 중립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또 다른 동조”라며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기도 안에 끌어드리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평화에 우리가 응답하자”고 당부했다.


또한 교황이 전쟁에 하느님 이름을 동원하는 행위를 비판한 점을 언급하며, 국제사회가 이해관계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생명을 보호해야 할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했다. 사제단은 “전쟁 당사자들은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의 자리로 나아가라”며 “어떠한 명분도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표명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하느님은 전쟁을 거부하신다
전쟁의 시대,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 21세기의 첫 4반세기는 전쟁이 마치 문화로 착각되는 시대, 무관심의 세계화’풍조와 더불어 전쟁이 익숙해져 버린 시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 크고 작은 전쟁이 만연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력 충돌은 더 이상 낯선 사건이 아니라 익숙한 뉴스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일상이 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생명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공동체를 근본에서 무너뜨리는 명백한 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는 안보와 이익, 명분과 논리를 앞세워 전쟁을 정당화하려 한다. 무기를 들고 평화를 말하는 모순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로마 5,17 참조)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던 저 한 사람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전운이 일고, 그로 말미암아 지구촌의 많은 민족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은 제대로 된 선전포고도 없이 이란을 공습한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스라엘도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자신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전쟁이 촉발한 경제적 불안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 존재를 압박한다. 선과 악은 힘의 강약 여부로 판단되고, 인간은 점점 더 타인을 향해 닫히며, 연대는, 어제도 오늘도 ‘마가’를 외쳐대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어서 한낱 골목대장만도 못한 두 양아치들에 대한 눈치 보기 혹은 사치로 전락해 버렸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마태 2,18) 군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 것으로 모자라, 민간인들과 무고한 어린이들까지도 희생되었다.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만으로도 중죄인데, 학교·의료시설·주택까지 타격하여, 민간인들과 어린이들까지 희생시켰다는 것은 천인공노 할 일이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의 온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악례다. 희생된 영혼들과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지구 전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전쟁은 가장 힘없는 이들의 삶을 먼저 파괴하지만,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다. 전쟁이 가지고 오는 불안과 고통의 무게는 결코 공평하게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무기를 들고 평화를 말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이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나는 전쟁을 거부하는 하느님이다. 지난 3월 29일, 레오 14세 교종은 전쟁의 광기로 가득 찬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을 거부하시는 하느님이시고, 그 누구도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며,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 기도를 물리치시며 말씀하십니다.‘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이사 1,15)”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참 생명과 참 평화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계신다. 전쟁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다. 더 많은 무기도 아니다. 더 교묘한 외교도 아니다. 지금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의 길을 실제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교종 레오 14세의 말씀과 행보에 결을 같이 하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을 규탄하고, 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여파로 신음하고 있는 모든 생명을 기억하고자 한다. 사제단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예수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여자들처럼, 전쟁이 몰고 온 참상에 체념도 하지 않고 넋을 빼앗기지도 않으면서 두 눈 부릅뜨고 직시한다. 또한 적극적인 마음으로‘전쟁광’들의 모진 마음을 고발하고 규탄하여, 힘들어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의 아픔에 동참한다.
지금, 평화를 선택하라! 전쟁은 수많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두려움을 선택하고, 불신을 선택하고, 대화를 포기하고, 힘을 앞세우는 길을 선택한 결과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전략도, 더 세련된 외교도 아니라, 더 분명한 결단이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전쟁은 인간의 선택이며, 따라서 멈출 수도 있는 선택이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손이라면 그 손으로 내려놓을 수도 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이라면 그 권력으로 중단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느님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지배가 아니라 관계를, 폭력이 아니라 사랑을 원하신다. 사제단은 그 하느님에 힘입어 다음 사항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1. 전쟁 당사자들은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과 보복의 논리를 내려놓고, 조건 없는 대화와 협상의 자리로 나아가라. 어떠한 명분도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없다.
2.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는 이해관계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생명을 보호해야 할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
사제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과 시민들에게도 호소한다.
3. 무관심에서 벗어나자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결코 중립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또 다른 동조다. 그러므로 무관심에서 벗어나자.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선택과도 무관하지 않다. 침묵을 깨뜨리자. 불의 앞에서의 침묵은 평화를 지키는 태도가 아니라 불의를 지속시키는 조건이 된다.
4. 기도하자. 현실을 외면하는 기도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자신의 기도로 끌어안는 기도를 드리자.
5. 행동하자. 작은 연대라도 좋다. 평화를 지향하는 말 한마디, 폭력을 거부하는 태도 하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하느님은 이미 평화를 선택하셨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2026년 4월 30일
부활 제5주일 생명 주일을 앞두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호재 기자 ho@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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