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지식 생산과 노동 구조, 교육의 방식까지 바꾸는 현실 속에서 대학과 가톨릭 지성인의 역할을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AI를 단순한 기술 도구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위한 방향으로 분별하며 비판적 사고와 인격적 관계성을 지닌 지성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서울가톨릭교수협의회와 서울대·숙명여대·가톨릭관동대·대구가톨릭대 가톨릭교수회, 서울대 가톨릭졸업생공동체는 5월 9일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에서 ‘AI의 도전과 대학 - 가톨릭 신앙의 역할’을 주제로 제1회 강학회(컬로퀴엄)을 열었다.
제1세션 발표자로 나선 허두영(디오니시오) 한국과학언론인회장은 AI가 복음 선포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그 활용 방식에 대한 신중한 분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적 우위가 자칫 현지인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마법’이나 ‘지배의 도구’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허 회장은 교황청 문헌이 인간 존엄, 공동선, 윤리적 AI라는 ‘왜’를 제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 실천할 것인지가 아직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머지 5개 육하원칙을 완성하는 것이 가톨릭 지식인의 몫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강사인 조원형(보나벤투라) 박사는 대학의 역할을 ‘AI가 할 수 없는 일’에서 찾았다. 조 박사는 AI에는 의지력, 지적 호기심, 비판 능력, 도덕·윤리적 판단 능력이 없으며, 이 부재를 메우는 일이 대학 교육의 자리라고 설명했다.
대학이 언어 사용, 정보의 비판적 수용, 새로운 문제 제기와 목표 설정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힌 조 박사는 특히 글쓰기 교육도 “‘질문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성찰하는 힘’과 ‘대답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AI를 둘러싼 윤리와 제도, 교회의 응답이 주요 과제로 다뤄졌다.
「한 권으로 끝내는 ESG 수업」 저자 신지현(로사리아) 작가는 AI 도입 초기부터 환경·사회·거버넌스(ESG) 전반을 아우르는 윤리적 점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작가는 “부, 권력, 지능을 모두 거머쥔 빅테크 기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며 “가톨릭 신앙과 ESG는 AI 기술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교육 및 개발 공간 ‘튜링의 사과’ 조한열(미카엘) 대표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윤리 판단이 내재돼 있지 않다”며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는 공허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AI 교육업체 더에이아이랩 최영준(요한) 대표와 서강대 신학연구소 홍태희(스테파노) 선임연구원은 AI 시대 대학의 과제가 기술 적응을 넘어 인간을 더 깊이 형성하는 데 있다고 짚었다. 최 대표는 AI 문해력과 윤리 교육의 제도화를, 홍 선임연구원은 인간의 취약성과 관계성, 돌봄의 소명을 지키는 일을 강조했다.
제2세션에서는 서울 WYD 조직위원회 기획본부장 이영제(요셉) 신부,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PCK) 장소현(데보라) 이사, 숙명여대 박소진(로사) 교수 등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대학’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들은 WYD를 청년들이 공동 책임의 주체로 성장하는 ‘카이로스’, 곧 구조적 위기와 영적 기회가 교차하며 분별과 변혁적 행동을 요구하는 은총의 때로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나눴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