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 (2)
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특강을 기획했다.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강사로 나서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강의한다. 본지를 이를 요약 정리해 과달루페 성모 발현 이야기와 의미를 전한다.
장미로 가득 찬 틸마와 과달루페의 성모상을 드러내는 성 후안 디에고의 모습이 묘사된 모자이크. O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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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신 성모님
지금으로부터 495년 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1500년 만에 성모님은 이 땅을 다시 찾아오셨다. 그 발현지는 이스라엘도, 로마도 아닌 멕시코 과달루페였다.
교황청이 공식 승인한 성모 발현은 16건, 지역 주교들이 인정한 발현은 386건에 이른다. 그 모든 발현 가운데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발현, 지금도 그 실체가 5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 있는 기적이 바로 멕시코 과달루페 발현이다. 루르드와 파티마의 성모님은 몇 차례 발현하시고 끝이 나셨지만, 과달루페 성모님은 발현하신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신다.
이번 강의에서는 1531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발현의 전 과정을 따라가 본다.
첫 번째·두 번째 발현 — 1531년 12월 9일 새벽과 오후
1531년 12월 9일 토요일 새벽,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4년쯤 된 57세의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30km 떨어진 틀라텔로코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테페약 언덕을 넘어가던 그 순간, 아름답고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언덕 정상에서 들려왔다. 이어 "후안 디에고!"라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디에고는 정상으로 올라갔다.
테페약 언덕은 해발 2300m로, 한라산보다도 높은 고원이다. 그 꼭대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구름 속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하얀 백인 여성이 아니었다. 스페인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의 얼굴, 검은 머리와 갈색 피부였으며, 찬란한 황금색 별 46개가 새겨진 청록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 위치한다. 중동 여성들의 피부색은 진한 갈색이다. 성모님의 발현 모습 하나에 당신의 보편적 현존이 담겨 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디에고에게 원주민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을 받는 자여, 너는 내 말을 명심해 듣도록 하여라.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구원과 보호를 증거가 되기 위하여 이곳에 하루바삐 성전을 세우기 바란다. 나는 모든 사람이 탄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너는 주교에게 가서 나를 위한 성전을 세워야 함을 밝히고,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이셨다. 1858년 루르드에서는 글도 모르는 14세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시어 본당 신부님께 라틴어로 "Ego sum Immaculata Conceptio(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이다)" 라고 전하라 하셨다. 1917년 파티마에서는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라는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 공산주의의 회개와 인류의 평화를 촉구하셨다. 하느님의 영광은 언제나 가장 나약한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용기를 낸 후안 디에고는 주교관으로 찾아가 멕시코 초대 주교 후안 데 마라가를 어렵게 만났다. 그러나 주교는 디에고의 말을 믿지 않고 돌려보냈다. 하인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쫓겨난 디에고는 오후 5시경 테페약 언덕으로 돌아왔고, 기다리고 계시던 성모님께 사정을 그대로 아뢰며 자신보다 지체 높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성모님은 말씀하셨다. "이 일을 위해 내가 택한 사람은 바로 너다. 내일 아침 다시 주교에게 가거라."
세 번째 발현 — 12월 10일 일요일 오후
이튿날 주일, 디에고는 미사 후 다시 주교관을 찾아가 성모님과 나눈 대화를 확신에 찬 태도로 상세히 전달했다. 그러나 주교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그는 "성모 마리아의 표징을 하나 가져오면 믿겠다"고 요구했다. 디에고는 그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오후 3시경 테페약 언덕으로 올라갔다. 성모님은 이미 기다리고 계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주교가 요구한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줄 테니 내일 이곳으로 오너라. 네가 그것을 가져간다면 더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일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대성당 앞에 있는 조각상으로 후안 디에고가 무릎을 꿓고 틸마를 펼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OSV
네 번째·다섯 번째 발현 — 12월 12일 화요일 이른 아침, 장미꽃의 기적
그런데 11일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디에고의 숙부 베르나르디노가 열병으로 위독해진 것이다. 저녁이 되자 숙부는 임종이 가까웠음을 직감하며 조카에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집전해 줄 신부님을 모셔 와달라고 부탁했다.
12일 이른 아침, 디에고는 신부님을 모시러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성모님을 만나면 시간이 지체되어 숙부가 병자성사를 받지 못할까 염려된 그는 테페약 언덕을 피해 다른 길을 택했다. 그러자 성모님이 친히 언덕 중턱까지 내려오시어 물으셨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당황하고 부끄러웠지만, 디에고는 사정을 솔직하게 아뢰었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알아 두어라. 이제 네가 두려워할 일은 없다. 숙부의 병이 이미 완쾌되었음을 확신해도 된다. 가거라. 네가 나를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있을 테니 그것들을 따서 이곳으로 가져오너라."
때는 12월이었고, 테페약 언덕은 척박한 바위투성이의 해발 2300m 고원이었다. 장미가 피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가 보니 놀랍게도 활짝 핀 장미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디에고는 장미를 꺾어 틸마(겉옷)에 담아 성모님께 가져갔다. 성모님은 말씀하셨다. "이 장미를 주교에게 가져가 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하거라."
틸마의 기적,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성화
후안 디에고가 낮 12시경 주교 앞에서 틸마를 펼쳤다. 장미꽃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순간, 주교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눈이 멈췄다. 틸마 위에 성모님의 모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에서만 피는 장미꽃이었다. 한겨울 멕시코 고원에서, 그것도 먼 고향의 꽃이 피어난 것을 눈으로 확인한 주교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주교는 자신의 불신앙을 뉘우치는 기도를 바친 뒤 틸마를 기도처에 소중히 보관하고, 디에고와 함께 테페약 언덕으로 향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자리에 먼저 작은 경당을 세우기로 했다.
한편 같은 시각, 성모님은 병상에 누워 있던 숙부 베르나르디노를 찾아가셨다. 다섯 번째 발현이었다. 성모님은 베르나르디노를 위로하시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주시고, 이렇게 이르셨다. 테페약 언덕에 성전이 세워지면 틸마에 새겨진 당신 성화를 그곳에 안치할 것이며, 성화의 이름을 '과달루페의 성모'라 불러야 한다고 하셨다. 성모님은 '돌 뱀을 물리친 여인'이라는 뜻의 아즈텍어 "테 과틀라소페우"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르나르디노가 '테 과달루페'로 알아들었고, 그때부터 그 이름이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대성당에 있는 틸마. OSV
500년을 견딘 기적의 증거물, 틸마
현재 과달루페 대성당에 보존된 후안 디에고의 틸마는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의 탐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삼베와 면사로 짠 이 원주민 겉옷이 5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썩거나 변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이다.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위대한 표징이 눈앞에 있어도 신앙이 없으면 그 표징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흘 동안의 혼란과 의심 끝에 주교가 무릎을 꿇은 것처럼, 우리 역시 끝내 무릎을 꿇는 순간이 신앙의 시작이다.
5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기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방송일시 : 첫 방송 5월 2일(토) 오전 7시 50분, 매주 토 오전 7시 50분 / 일 오후 3시·오후 10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