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니 이제야 남편이 이해가 돼요. 불편한 몸으로 가장이 되어 평생 살아온 나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남편이 계속 함께해줬으면 좋겠어요.”
홍명숙(제노베파, 67, 서울 등촌3동본당)씨가 병상에 있는 남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하는 이가 많았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다리가 불편했던 남자였다. 인상은 다소 무뚝뚝했지만, 마음만큼은 선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나전칠기 기술을 익혀 생계를 꾸렸고, 1987년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목수 일을 새로 배웠다.
1994년 지금 사는 임대주택으로 이사한 뒤 부부는 등촌3동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봉사하며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면서 “나 홀로 장애가 아니며, 주님께서 늘 이끌어주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본당에서 안 해본 봉사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임했다. 남편은 목공 기술로 성당 곳곳을 고치며 기여했고, 지금도 연고 없는 어르신들이 “믿을 건 자네들뿐’이라며 장례를 부탁할 만큼 신뢰를 얻어왔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됐다. 남편은 2007년 작업 현장에서 사다리 추락 사고를 당해 결국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다. 지난해 7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수술비 15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다행히 본당과 지역 복지관 등의 긴급 지원으로 수술은 받았지만, 이후 폐암 4기 진단이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전립선암 수술비 미납금 500만 원에 더해, 신약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500만 원가량이 들어 빚은 수천만 원대로 불어났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합쳐도 월 소득은 130만 원 정도다. 생활비와 입원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재산은 임대주택 보증금 300만 원이 전부다.
남편의 암은 이미 뇌와 척추까지 전이됐다. 이젠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다. 홍씨는 매일 정성껏 남편을 돌봤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교수님께서 ‘환자가 환자를 돌본다’며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셨어요.”
홍씨 역시 투병 끝에 유방암을 이겨냈지만, 지난해 8월 허리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발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힘겹게 몸을 끌어야 한다. 남편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엔 섬망 증세까지 나타나 의료진으로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홍씨 혼자 빚과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는 엄마와 둘이 살아왔어요. 남편은 결혼 때 두 번 묻지 않고 저희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했었죠. 그 이가 떠나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후견인 : 김원호 신부 / 서울대교구 등촌3동본당 주임
"홍명숙 자매님 부부는 어려운 형편에도 본당과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오신 분들입니다. 이제 두 분 모두 아픈 몸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평생 남을 위해 내어준 이 가정이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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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숙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4일부터 20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8)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