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필사합니다. 매번 새롭게 느껴지니, 빠져들어 매일 쓰게 되더라고요.”
한 번 읽기도 힘든 성경을 12번째 필사하고 있는 이진기(토마스 베케트?78·마산교구 하동본당) 씨에게 필사는 ‘습관’이다. 하루라도 쉬면 마음이 불편하다.
11번째 필사를 끝낸 건 지난 5월 20일.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며 21일을 보내고, 22일 12번째 필사를 위해 다시 성경을 펼쳤다.
이 씨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건 첫 아이를 가지면서다. 임신 중이던 아내 김수열(안젤라?76) 씨와 함께 교리를 배웠고, 첫째 동진(안셀모?46) 씨가 태어난 뒤 세 식구가 함께 세례를 받았다. 둘째 동주(마르코?44) 씨가 태어났을 때 부부는 ‘아들이 둘이니, 둘째는 사제가 될 수 있게 잘 이끌어 보자’고 약속했다.
둘째에게서 여느 아이들과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한 건 돌 무렵. 하루 종일 벽만 바라보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부부는 청력 문제라 생각해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중증 지적장애와 자폐였다. 한 살 정도의 정신연령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내도 저도 몇 년 동안 웃을 수 없었습니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신앙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 버틸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김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둘째 곁을 지켜야 했다. 부부가 집에만 머물던 그 무렵,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이웃 신자들, 수녀와 신부들이 차례로 찾아왔다. 둘째를 돌봐주고 말을 걸어주는 이들 덕분에 집안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부부의 성가정은 자연스레 본당 신자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 됐다.
그 사랑방에서 첫째 동진 씨가 자랐다. 다섯 살 무렵부터 “내 꿈은 사제”라고 말하던 첫째는 방황 한번 없이 신학교에 입학했다. 아들의 꿈을 들은 날부터 이 씨는 평일미사도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들이 군에 입대하던 날, 이 씨는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혼자서 훌쩍 자라 버린 첫째에게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사제서품식 날, 완성한 필사본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해고로 직장을 잃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을 때도 필사를 멈추지 않았다. 쓰고 기도했다. “사제로 잘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이 씨가 필사하는 동안, 김 씨는 매듭 묵주를 만들며 기도를 보탰다. “아들 신부님 잘 살아가게, 우리 둘째 다치지 않게 돌봐주소서.”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500여 개 묵주를 만들어, 아들의 첫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에게 전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김 씨는 묵주를 만들고 있다. 이동진 신부가 일본 삿포로에 파견되면서는 작업 속도를 더 높였다. 성물을 구하기 어려운 일본에선 직접 만든 묵주가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필사에는 둘째를 위한 기도도 더해졌다. 40대가 된 지금도 성당 유아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둘째가 언젠가 한 발만 더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를 바라며 이 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종이를 채웠다. 필사가 거듭될수록 기도는 더 넓은 곳으로 향했다. 대자녀를 위해, 아들 신부가 맡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다. 하루 8~9시간, 24년째 꾸준히 이어온 필사. 기도에 기대어 묵묵히 버텨온 그 모든 시간에 대한 훈장처럼, 이 씨의 오른손엔 굳은살이 깊이 배어 있었다.
이 씨는 독자들을 위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는 말씀을 추천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옵니다.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그 시간 동안 내 곁에 머무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죠. 많은 분이 그 사랑을 느끼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