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말한 ‘순종’과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효’ 사상이 ‘하늘로부터 와서 하늘로 돌아가는 사랑’이라는 구조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작은형제회 오수록(프란치스코) 수사와 고계영(바오로) 신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 연구는 7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제27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 발표회 ‘복음적 삶’에서 발표됐다. 서양 그리스도교와 동양 실학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나온 두 사상 안에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오 수사는 발제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순종’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응답”이라며 “이는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장상의 뜻이 하느님의 질서에 들어맞을 때 순종하는 상대적이고 자발적인 순종”이라고 전했다.
오 수사는 이어 “다산 정약용 또한 ‘성기호설(性嗜好說)’을 펼치며, 인간의 본성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꺼리는 데 있으므로 ‘효’ 또한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봤다”며 “이 효는 ‘자주지권(自主之權)’, 즉 자유 의지에 의해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생각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성인은 무질서에 불순종하는 것이 곧 순종이라고 했고, 정약용은 부모가 불의한 행동을 한다면 존중을 담아 간쟁(諫諍)하는 것이 진정한 효라고 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처럼 성인과 정약용은 같은 도덕적 통찰을 서로 다른 언어로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순종과 효라는 인간관계의 윤리를 초월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제시됐다. 오 수사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기초해 인간이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라고 했고, 정약용도 ‘효’가 결국 하늘을 섬기는 사천(事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오 수사는 “두 사상의 만남은 순종과 효가 권위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자발적 응답이자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을 바로잡는 용기 있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현대사회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평가했다.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칸 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발표회는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성인이 삶으로 보여준 청빈과 정결, 순명의 삶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발표회에서는 ‘서원인가, 카리스마인가? 프란치스칸 삶 이해의 출발점’, ‘프란치스칸 복음 삼덕에 대한 이해의 성경적 기초’, ‘성녀 클라라의 가난’, ‘프란치스칸 가난 이해의 진화, 그 뿌리를 찾아서’ 등 복음적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 발제들이 이어졌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