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의료 현장에 빠르게 도입되는 가운데, 인간을 데이터와 기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와 인간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의료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가톨릭대학교 정보융합진흥원과 생명대학원은 9월 11일 서울 반포동 가톨릭 옴니버스 파크에서 교황청 생명학술원 사무총장 안드레아 추치(Andrea Ciucci) 신부를 초청해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 윤리’(AI Ethics in Healthcare)를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열었다. 이번 강연은 지난 5월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이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선포한 「CMC 의료 AI 윤리강령」의 후속 학술 행사로 마련됐다.
이날 가톨릭대 김대진 교수는 ‘의료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CMC의 디지털 전환 과정과 의료 AI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AI 활용의 원칙으로 ‘전문가가 참여하는 구조’를 제시하면서 “모든 의료 AI는 항상 의료 전문가의 감독과 관리 아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AI를 활용하는 목적에 대해 “첫째는 고통받는 환자를 돌보는 것, 둘째는 돌보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 셋째는 행정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추치 신부는 AI 시대의 논의가 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라며 기술 발전과 함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 AI가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치 신부는 “AI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환자는 결국 기계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는 단순히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깊은 인간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윤리의 범위도 개인의 의료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강·유전체·인구 데이터 등이 새로운 권력이 될 수 있다며 “데이터를 통제하는 이들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추치 신부는 AI 윤리가 단순히 기술에 제한을 가하는 ‘안전장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많은 규칙과 안전장치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추치 신부는 “AI는 우리가 어떤 미래와 사회, 인간성을 원하는지 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지켜야 한다”며 “AI 시대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다양한 주체와 함께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