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교구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과 인천교회사연구소는 9월 18일 기념관에서 개관 기념 학술 심포지엄 ‘인천과 이승훈’을 열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의 가치를 새롭게 연구하고 나누고자 마련됐다. 순교자와 배교자라는 양극단에 가려져 온 이승훈의 시복 자격을 논하는 것을 넘어 신앙인이었던 그의 삶을 오늘날 재조명하자는 취지다. 이승훈은 배교와 회심을 반복했어도 끝내 순교로 목숨을 바쳤고, 스스로 세례받는 데 그치지 않고 성직자 없던 조선 땅에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발표를 맡은 서종태(스테파노) 호남교회사연구소 박사는 이승훈이 청나라 북경의 북당에서 교리를 배우고 세례받은 과정, 서학서를 들여온 과정을 살피고 1785년 명례방 사건 전후 그의 조선교회 내 역할을 규명했다.
서양 수학과 역법을 탐구해 온 이승훈은 천주교 서적을 비밀리에 연구하던 이벽(요한 세례자)에게서 천주교 문물을 구해 오라는 부탁을 받고 1783년 겨울 동지사 서장관인 부친 이동욱을 따라 북경에 갔다. 그는 일행의 눈을 피해 숙소와 북당을 오가며 선교사들과 필담으로 서학을 익혔고, 북당에 머무는 궁정 수학자이자 통역관인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부친의 도움으로 많은 서학서와 천주교 물품도 무사히 들여왔다.
귀국한 이승훈은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책만으로는 익히기 어려운 주일 기도 예절과 교리교육, 세례 예절을 주도했으며 대외적으로 조선교회의 대표 역할도 했다. 한편으로는 북당 선교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사제가 없어 성사를 받지 못하는 조선 신자들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고 밀사 파견을 이어갔다. 서 박사는 “그의 교회 내 역할을 규명하는 이러한 연구가 하느님의 종 이승훈을 새롭게 이해하고 현양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고 전했다.
방상근(석문 가롤로) 박사는 인천 지역이 교회 창설기부터 조선교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이승훈 집안이 통설과 달리 증조부 대가 아닌 5대조 무렵 인천으로 이주했고, 1784년에서 1790년 사이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을 통해 인천에 복음이 전해졌으며, 경기도 부천 소재 ‘함박리 교우촌’은 1838년 이전 이미 형성돼 있었다고 밝혔다.
조지형(하상 바오로) 국립전남대 교수는 학자들 사이 쟁점이던 조선시대 정부 기록 「일성록(日省錄)」 내 일부 한문 어구를 새로 정확하게 해석하는 등 기초 정보조차 불완전했던 이승훈 후손의 순교 계보를 재검토하고,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과 증손자 이연귀·균학 형제 등 주요 후손 정보를 보완했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관장 정광웅(마르코) 신부는 “기념관이 한국교회 뿌리를 기억하고 그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살아 있는 신앙의 공간으로 더욱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