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일 새벽,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이 한 해 동안 정성껏 일군 수확물을 트럭에 싣고 서울로 향했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앞마당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제철 농산물이 풍성하게 펼쳐졌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이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장터를 둘러보며 두 손 가득 농산물을 사 들었다.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서울 우리농)는 이날 명동대성당과 앞마당에서 ‘2026 가을걷이 감사미사 및 도농한마당잔치’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농민과 도시 소비자가 만나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고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자리다. 서울 우리농은 신자들에게 생명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농민들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돕기 위해 매년 행사를 열고 있다.
이영희(레지나·서울대교구 흑석동본당)·조은정(데레사) 모녀는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밥알 하나가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잘 안다”며 “자연이 살아야 생명이 유지되고 농부가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듯, 농민들의 정성과 노고로 키운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나눔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터뿐 아니라 생명농업과 생태적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전시마당에서는 가톨릭농민회가 실천하는 생명농업과 토종종자의 의미를 알리는 부스가 열렸고, 가톨릭회관 앞마당에서는 생명농산물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였다. 성당 앞 체험마당에서는 참가자들이 EM 샴푸바와 자투리 천을 활용한 휴대전화 주머니를 만들고 토종 씨앗을 심었다.
전주교구 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 박정희(로사) 씨는 “마트나 시장에서도 쉽게 농산물을 살 수 있지만, 여기서는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키운 농산물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명동을 관광하는 외국인 방문객들이 우리가 만든 수육과 김치를 먹고 ‘I like it’이라고 말해 굉장히 뿌듯했다”고 전했다.

이날 가을걷이 감사미사에서 10개 교구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농부학교·에코푸드 등은 한 해 동안 거둔 친환경·유기농 수확물을 봉헌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윤병길(요한 세례자)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새로운 문명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지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날씨만큼은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욱 느낀다”며 “하느님께서 필요한 때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고 결실을 이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농사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일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신부는 이주노동자 없이 농사를 짓기 어려운 오늘날의 농촌 현실을 언급하며, “이주노동자들도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며 “이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