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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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44) 걸어서 아강그리알까지

걷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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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 주일에 걸어서 아강그리알 들어간다!”

남수단에서 살게 된지 2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곳을 다녀간 한국사람 중에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쉐벳에서 아강그리알까지 22km 길을 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자동차로 또 트랙터로,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다녔던 길이지만 걷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동수단이 다양했기에 굳이 걸어갈 이유가 없었고, 걸어가면 적어도 4시간 가량 걸리는데 그 시간이 아깝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유를 또 들자면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야생동물의 공격이 걱정되기도 했고, 가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목동들이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위협한 적이 있는데 걷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니 제 생각, 걱정과는 달랐습니다.

주일미사가 끝나고 슬슬 떠날 채비를 합니다. 아강그리알로 가져갈 짐은 차로 이동하는 표 신부에게 부탁하고, 저는 맨몸으로 양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까미노 데(Camino de) 아강그리알’을 시작합니다. 성당 마당을 나서는데 벌써부터 직원들이 달려와 묻습니다. “뭐하는 거예요? 아강그리알 가는 거예요? 걸어서?” “어, 걸어가려고”하고 대답하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성당을 벗어나 프리덤 스퀘어(마을 운동장 겸 광장)를 지나면서 동네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시장을 지나면서 역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나눌 때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가?”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디 가는지 되게 궁금한 모양입니다. 어디 가는지는 꼭 물어봅니다. 그러면 제 대답은 ‘아강그리알’이죠. 평소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이 길을 다닐 때는 사람들과 이렇게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하고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는데 걸어가다 보니 사람들을 더 가까이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하면 늘 자신을 좀 태워달라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면서 지나다녔고, 심지어는 태워주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걷다보니 오히려 저를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 먼 길을 언제 가려냐며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강그리알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오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인데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저를 보더니 걸어가는 거냐고 묻고는 자기가 빨리 쉐벳에 가서 일을 보고 올테니 천천히 가라고, 돌아와서 저를 태워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아무튼 고마운 아이였습니다.

약 3시간 반이 걸려 아강그리알에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걸어 들어오는 저를 보며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어디 두고 걸어왔냐는 거지요.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이들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늘 걷던 사람들이고,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보급으로 이제 좀 덜 걷게 된 이들이거든요.

아무튼 한 번 걸어봤고 나쁘지 않았으니 또 걸어봐야죠. 더 많은 사람도 만나고 돌 던지고 몽둥이로 위협하던 목동들과도 좀 친해져봐야겠습니다.


 
▲ 쉐벳에서 아강그리알까지 22km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진은 아강그리알 전경.
 

※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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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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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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