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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에너지 절약 사회로 만들어야

▲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들이 `코드 블랙`이 발령되자 지하 6층 전기실 복도에 켜진 붉은 경광등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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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블랙, 코드 블랙!(Code Bla ck)"
6월 21일 오후 2시 서울성모병원 지하 6층 전기실(재난대책 임시상황실)에서 긴급 정전 경보가 발령됐다. 코드 블랙은 `블랙 아웃`(Black Out, 대규모 정전)이 됐다는 것을 칭하는 경보 문구. 병원 전력수급 상황을 알리는 대형 모니터의 전력 흐름도가 녹색(정상)에서 빨간색(정전상태)으로 전환됐다. 전기실 복도 천장에 부착된 빨간 경광등 불이 켜지더니 곧바로 무정전 전원공급장치가 가동됐다.
이날 서울성모병원 코드 블랙 발령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정부 주관으로 처음 열린 `정전대비 전력위기대응 훈련`의 일환으로, 이번 훈련은 아파트와 주택, 공단 등 다양한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훈련은 5월부터 예비전력이 350만~500만㎾를 밑돌았으며, 6월 7일부터 예비전력이 350만㎾ 이하로 떨어져 이날 한전이 서초지역 계획정전을 단행했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토대로 진행됐다. 비록 실제상황은 아니지만 훈련을 위해 의료진과 병원 직원, 참관인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응급실 앞에서는 정전으로 호흡기 장치 등이 중단됨에 따라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위급 환자 이송 훈련도 시행됐다. 환자(모델) 2명은 응급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 2대에 각각 실려 정전이 되지 않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다는 설정이었다.
서울성모병원 시설팀 전기담당 이구희(베드로)씨는 "저희 병원은 블랙아웃이 되더라도 전기가 끊기는 경우는 없다"며 "무정전 전원공급장치가 가동되는 데다 필요할 때는 2900㎾, 1500㎾급 열병합발전기 2대를 가동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날 전국 각지에서 정전대비 훈련을 벌인 것은 지난해 9월 대규모 정전으로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전기 없이는 조금도 살 수 없는 세상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예고 없는 대정전으로 전기가 끊긴 집만 753만 가구에 달했고, 중소업체 공단 554곳이 그대로 멈춰 섰다.
또 은행 417개 지점 현금인출기 작동이 멈추는 바람에 금융권도 마비됐고, 양식장 전기공급이 끊겨 광어와 산천어 등이 집단 폐사했다. 엘리베이터 멈춤과 신호등 정지, 프로야구 경기 중단 등 작은 피해는 신고된 것만 2000여 건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전훈련이 근본적 문제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력부족 문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정부가 원전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전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전이 아닌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우리나라 국가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더라도 국민 모두의 에너지 과소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전력 부족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한 독일의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은 7522㎾/h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8064㎾/h로 독일보다 많은 수준이다.
양기석(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총무) 신부는 "정부가 실제로 전기를 절약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 에너지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에너지 다이어트`를 전개할 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