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 진교훈(토마스 서울대 명예교수)
태암 김규영(토마스 아퀴나스) 선생님을 저는 1956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연례행사인 대락회가 열렸던 정릉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가을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시다가 저와 헤르만 헤세의 시를 화제로 삼은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선생님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중세철학 강의에서 그분의 중요한 화두인 ‘무지의 깨달음’과 ‘반대의 일치(暗合)’라는 귀한 말씀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해방 전후 좌우익의 대립 지금도 어느 곳을 막론하고 편을 가르고 음해하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으시고 인화(人和)를 중시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서양중세철학의 선구자 매일 새벽 미사 참례 50년 동안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회합 참석 본당 총회장 봉사 등 독실한 천주교 신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불가의 이종익 교수를 초빙하여 원각경을 또 탄허 스님을 모시고 화엄경을 윤독하는 모임을 주선하셨습니다. 유학자들과 교분을 나누셨고 또 노·장자를 즐겨 읽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불가의 원융무애(圓融无涯)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공(空)한 것[貪嗔痴三毒]임을 깨달음 유가의 경(敬)을 도가의 무위화(無爲化)와 ‘자연스러움’을 복자수도회 창설자 방유룡 신부님으로부터 배운 무아(無我)와 침묵대월을 평생 화두로 삼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죽음과 영원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어 경성제국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시고 졸업 후 모교 대학원에서 계속 연구하고 조수로 근무 중 해방을 맞이하셨습니다. 해방되던 해 봄에 서울에서 정혜원(아타나시아) 여사와 결혼하셨고 보성고교와 경기고교에서 외국어 교사를 하시면서 조회와 종례시간에 칠판에 매일 짤막한 명언과 시를 적어 놓아 사람됨을 일깨워주시곤 하여 깊은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선생님은 1946년부터 서울대에서 강사로서 20여 년 간 서양고대철학사와 서양중세철학사를 강의하셨는데 그분의 구도자의 모습에 수강자들은 전공을 막론하고 감동을 받아 존경해마지 않았습니다. 동국대에서 13년 서강대에서 18년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셨고 가톨릭대 신학대학과 수원가톨릭대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면서도 늘 영원을 갈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주요 저서들 「시간과 영원」「시간론」「실존에 관한 명상」「철학과 신」「영원의 의미」 등이 있는 것을 보아도 선생님의 철학은 일관되게 죽음을 넘어서는 길의 모색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 시절부터 한평생 끈질기게 추구하여온 한결같은 주제는 바로 시간의 문제였습니다. 본래적인 시간은 공간적 관념이 배제된 구체적인 산 시간으로서 순수 지속이며 내면적 지속이며 이 순수 지속의 극치가 바로 영원성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시간을 뛰어넘고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과 벗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씨앗은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죽음이란 생명이 영원으로 이어져가는 사이에 있는 한낱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술회하신 것처럼.
“당신을 통해서 영원의 모습이/ 빛이/ 소금이/ 조금이라도 더/ 널리 세상에 퍼지기 위해서.”
스승이시여 무상의 초극자여 당신을 우리는 찬미하나이다.
끝으로 선생님을 기리면서 사모님 아타나시아와 효녀 골룸바의 가없는 희생을 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