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순 하상 바오로(창원대 사학과 교수,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봄’이라는 말이 ‘보다(見)’에서 나왔다는데, 지금 사방을 둘러보면 꽃과 초록이 지천이다. 이 생명의 대향연에 숨은 주역은 물이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속성이건만, 봄에는 거꾸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 ‘생명의 기적’을 이룬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면, 뿌리는 땅 밑의 영양분을 품은 물을 흡수하여 올려보내고, 이를 받아 가지 끝에 아름다운 꽃과 싹이 튼다. 이 꽃과 새싹에 온갖 벌레들과 새들이 찾아오고, 이들을 쫓아 다른 동물들도 활기차게 움직여, 생명의 대향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들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승화강(水乘火降)이란 말이 있듯이 화기와 분노가 내려가고, 생명의 물기가 위로 올라와야 한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분노와 분쟁을 내리고, 사회 저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생명의 기운이 물과 같이 위로 올라가서 꽃과 싹을 틔우면 건강한 사회이지만, 이것이 막힐 때 그 사회는 봉기나 혁명으로 터지게 된다. 그리하여 봄은 흔히 봉기와 혁명의 메타포(은유)로 사용된다.
이러한 봉기와 혁명의 계절에 우리는 총선거를 치렀고, 그 결과는 여당의 대참패였다. 선거 기간 우리가 본 여권의 광경은 정말 가관의 종합 코미디세트같이 참담했다. 그 결과 여당은 마땅한 심판을 받았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으며, 신생 국민의당은 대약진하였다. 이제 우리 사회는 생명의 물이 막힘없이 흘러 꽃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것인가? 사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은 여권 심판만으로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고 넓다. 어쩌면 선거 이후가 더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지만, 내부에는 국가 안보나 정전 체제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소위 ‘정체성 문제’라는 이름으로 심각한 대립이 있다. 또한, 국민들이 기득권의 여야를 다 싫어해서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이지, 국민의당 스스로 검증받은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유일한 것이 있다면, 정계와 국회는 당파싸움으로 끊임없이 갈라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 국민들은 최선, 아니 차악의 선택을 하여 ‘다당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란 국난을 겪으면서 선조는 ‘이래도 동인과 서인으로 나눠 당쟁을 하겠는가’ 한탄하였지만, 사실 당쟁은 임란 이후 본격화되어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등 분파를 다 외울 수도 없는 정도로 분열되었다. 그 끝에 조선의 망국이 있었다. 해방 이후 하지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한국인은 두 사람이 만나면 세 개의 정당을 만든다”고 했다. ‘각각 하나 만들고, 둘이 같이 하나 더 만든다’고. 그 끝에 좌우 대립과 남북 분단이 있었다. 요컨대 이번 총선의 결과는 여소야대의 다당제로 귀결되었지만, 이것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될 수도 있지만, 당쟁과 분열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을 믿는 종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정파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판의 아귀다툼을 상대화할 수 있는 보다 큰 차원에서 화해와 일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원효가 화쟁(和爭) 사상으로 귀족의 분열을 통합하고, 대중의 바다로 들어가 민심을 통일하였듯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 사도가 “네, 주님을 사랑합니다.”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종교가 정파와 정치인들에 좌우되지 않고 사회 바닥으로 내려가 어린양을 찾아 돌볼 때만이, 우리는 예수님도 사랑할 수 있고, 정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양 그 생명의 기운을 위로 끌어 올려 꽃과 싹을 틔울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의 봄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