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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성경 속에 나타난 한센병

채규태 알비노(가톨릭대 의대 교수, 한센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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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규태 알비노(가톨릭대 의대 교수, 한센병연구소장)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5년 12월 8일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을 지내고 있는 올해 40년간의 교직을 무사히 마치고 은퇴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보살핌 덕분임을 고백합니다. 1976년 의과대학 졸업 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센병(나병) 연구와 진료에 바친 외길이었지만, 함께하는 선배와 동료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일생일로(一生一路), 일생일업(一生一業)의 삶을 살다 보니 자연 고집스러워지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습관이 생기고, 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세월,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마음 상하신 분들께는 공자가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용서를 청합니다. 저도 그분들을 위해 화해와 치유의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난 40년간 한센병을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겪은 가장 난처한 일 중 하나가 ‘나병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병은 하느님이 내린 벌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환자 본인이나 이웃 사람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가 그런 말을 할 때 안타까운 적이 많았습니다.

성경에는 나병 관련 단어가 83회 등장한다고 합니다. 구약 탈출기부터 치유 기적에 관한 신약의 공관 복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 나타납니다. 나병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모세가 하느님과 만날 때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라는 임무를 줄 때 모세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나병 같은 불치의 병도 고칠 수 있는 초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레위기 13장에 나병(leprosy)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우리말 성경에서는 ‘악성 피부병’이라고 언급합니다. 레위기 14장은 전체가 악성 피부병의 정결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병은 정결례의 대상이었지만 현대, 특히 1943년 이후 한센병 치료 약제가 개발되어 나병은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닙니다. 1∼2년 다제요법으로 완치되고, 새 환자 역시 1년에 10명 미만 발생하는, 피부와 신경에 주 증상이 나타나는 보통 감염병일 뿐입니다.

의사였던 루카가 기록한 루카 복음(5,12-16)을 보면 예수님께서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환자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치유한 다음 사제에게 가서 모세가 정한 정결례를 행하게 합니다. 나병이 깨끗하지 못한 것,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는 구약의 내용과 상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아들 예수를 희생 제물로 삼아 우리를 용서해 주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이후 죄와 벌의 대상이었던 나병은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당신의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히브 13,12),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가 깨끗해졌고, 하느님과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에페 2,13).

죄인인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3,19-20). 따라서 구약 시대에 죄나 벌이라고 표현했던 나병도 예수 부활 이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신약의 시대, 예수 부활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병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죄나 벌과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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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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