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하 토마스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
참으로 암담한 시절이다. 양극화, 저성장, 무(無)비전, 고착화라는 4대 위기에 처한 한국을 살릴 방안은 대체 무엇일까? 한 달 넘게 박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 집회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한 신문을 보고 있자면 이 난관을 벗어날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암울할수록 대중은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찾는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4년 전 우리는 양극화와 저성장으로 성장의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구할 메시아로 박근혜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러나 무려 1570만 명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우리의 메시아는 양극화를 극복하지도 못했고, 대한민국호의 재도약을 위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대한민국호를 좌초시켰다. 이제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들은 총체적인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호를 구할 새로운 메시아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제대로 된 메시아를 찾을 수 있을까?
구약성경을 보면 주변 부족들 사이에서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날 하느님께 자신들을 통치할 왕을 세워주기를 원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요청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지만 그들의 원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셨다. 그러나 사울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한 왕들의 역사였다. 전쟁에서 패하여 자살한 사울은 물론이고 그를 이어 왕이 된 다윗 역시 부도덕한 사생활로 비난을 받았으며, 하느님께서 그 지혜를 칭찬했던 솔로몬조차 우상 숭배와 사치로 비난을 받았다.
솔로몬 이후에 전개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든 왕의 역사는 한마디로 실패한 왕들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 왕 이후 1000년이 지난 후인 로마의 식민 지배 아래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구원할 이상적인 왕인 메시아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메시아를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그 메시아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왕이 아니었기에 그를 버렸다.
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정치적 지도자를 메시아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대한민국호를 구할 메시아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한 집단의 메시아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메시아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통령을 사실상 왕처럼 생각해왔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집단을 수호하는 메시아로 생각해왔다. 그러기에 선출된 대통령을 두고 지지자들은 그를 메시아처럼 환대했고, 반대파는 처음부터 그에게 등을 돌렸다. 우리의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종교전쟁을 보는 듯하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땅에 천국을 세우려는 인간의 노력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 이상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고려할 때 그 실현은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한 이 땅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나에게 이 땅의 천국을 선사하는 메시아는 나와 이해관계가 다른 이에게는 지옥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출해야 할 대통령은 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타협과 조정을 통해 풀어내는 지혜로운 조정자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12월은 메시아가 오신 달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메시아가 필요할까? 내 마음에 진정 메시아가 계시다면 세상의 권세를 탐하는 카이사르가 메시아가 될 수 없음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지혜가 있어야 비로소 이 땅에 평화가 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