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다. 잠시 한눈을 팔면 정작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은 저만큼 멀어져만 간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자극, 즉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다 보니 그것을 소화해 내지도 못한 채 정보의 체증을 앓는다. 음식을 섭취하면 반드시 배설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들어오는 자극들은 걸러내고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정보는 과잉으로 섭취하는데 그 배설은 묘연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의 양보다 내용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정보는 매우 폭력적이다. 각종 흉악 범죄가 늘고 있는 요즘, 언론 보도의 행태를 살펴보면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기삿거리를 쏟아내며 잔인한 범행 장면을 묘사하거나 재현한다. 범행 동기부터 범행이 일어나는 장면까지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다. 자살 보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살의 동기와 과정, 그리고 자살 방법까지 적나라하게 알려 주곤 한다. 너무도 빨리 분석되는 경우 이것이 검증을 거친 보도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를 과연 알 권리 충족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너무도 많은 정보 소통 채널이 등장하다 보니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메이저 언론들도 이들을 따라잡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 미디어 채널을 통해 보고 들은 것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전파를 타는 건 일상이 됐다. 개인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는 시청률이나 클릭 수,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헤드라인을 더욱 자극적으로 만든다. 잔인하거나 혐오스럽고 우려되는 사건 사고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더욱 자극적으로 낱낱이 반복되고 재생산돼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매체별 특성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는 파급력이 막강하다. 매스미디어 강효과 이론으로 탄환이론, 피하주사이론이 있다. 과녁을 향해 탄환을 발사하면 명중하는 것처럼, 혹은 몸에 피하주사를 놓은 것과 같이 미디어를 통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빠르고 강하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론은 다양한 비판을 받으며 퇴조했지만, 여전히 매스미디어는 탄환처럼 강하고 그 여운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가족이 함께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특히 어린 아이가 있을 경우에는 더욱더 곤란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흉악 범죄와 기성세대들의 부끄러운 부조리가 하루종일 쏟아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불편함으로 넘어갈 기사들이 누군가에게는 모방 범죄의 유혹이 될 수 있다. 또 유사한 사건이나 사고로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는 트라우마의 재현이 될 수도 있다.
미디어 매체의 보도에는 분명 보도지침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할 것이다. 자살 보도나 흉악 범죄를 보도할 때 보다 적극적인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알 권리가 있다면 굳이 알고 싶지 않는 권리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기를 살고 있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행복’한 삶은 이 시대의 화두다. 가족이 함께 뉴스를 시청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밥상을 차리다 잔인한 범죄 수법을 알려 주는 뉴스가 나와 얼른 채널을 돌렸는데 더 끔찍한 보도에 TV 전원을 끌 수밖에 없었다.
모든 미디어 매체들이 솔선수범해 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하면 내가 하겠다가 아닌, 내가 먼저 하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내일 아침에는 ‘행복’ 뉴스를 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