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를 계기로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권도시’를 화두로 광주시와 함께한 지난 7년간의 노력이 생각났다.
한국인권재단에서 일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2010년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광주광역시에서 인권 담당 공무원이 찾아왔다. 그는 5ㆍ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앞두고 광주광역시에서 ‘인권도시’에 관한 국제회의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문과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은 ‘인권도시’라는 개념을 유엔에서 사용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지만, 당시 ‘인권도시’라는 단어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처음 들었을 때 매우 생소하고 신선하던 느낌은 지금도 새롭다.
한국인권재단은 공동 주최 기관으로 적극 참여했고, 계획대로 2011년 5월 16∼18일 광주에서 제1회 세계인권도시포럼이 개최됐다. 해외 참가자 100명을 포함, 수백 명이 참석한 개막식에는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와 고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축사가 낭독됐다. 그리고 3일간의 본회의에서 5ㆍ18 민주화 운동에 드러난 ‘광주 정신’을 어떻게 ‘인권도시’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이를 아시아와 국제 사회에 확산할 것인가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이후 세계인권도시포럼은 연례적으로 개최돼 인권도시에 대한 대표적 국제 회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처음 이 회의를 조직할 때 ‘인권도시’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광주광역시를 주최 도시로 소개할 때는 상대적으로 ‘인권도시’라는 말에 대한 의구심을 쉽게 상쇄할 수 있었다. ‘광주가 왜’라기 보다는 ‘광주니까’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는 해외 참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참가자들이 광주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함께 ‘인권도시’라는 주제에 궁금증을 안고 회의에 참석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1994년에 설립된 ‘광주 5ㆍ18재단’ 역할이 컸다. 5ㆍ18재단은 오래전부터 광주아시아포럼을 개최,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활동가를 초청해 교육과 교류사업을 수행했고, 2000년부터는 광주인권상을 제정, 시상해왔다. 그리고 2010년 광주대교구는 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해 아시아 교회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인권과 민주주의 활동을 지원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광주는 아시아를 넘어 국제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알려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주 정신의 핵심은 군부 권력의 부당한 폭력에 맞선 정의로움과 스스로의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평화인권공동체를 이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공감했듯이 2016년 10월 29일부터 5개월간에 걸친 촛불시민혁명은 이러한 광주정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 모두 이제는 과거의 사건이 됐다. 두 사건 모두 일상에서 축적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시민운동의 일시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모순이 쌓이지 않도록 일상에서 예방하는 실천에 있다. 4∼5년마다 으레 하는 선거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광주광역시의 ‘인권도시’와 ‘인권마을’ 만들기 운동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운동이다.
2018년은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과 우리나라 헌법 제정 70주년이다. 지방정부도 인권을 국가에만 맡기지 말고 더 적극 나서야 할 때가 됐다. 예년과 달리 올해 제7차 세계인권도시포럼은 5월이 아닌 9월 14∼16일에 열린다. 올해도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수백 명이 광주에 모인다. 이제는 광주가 ‘민주화 성지’에서 ‘인권의 빛고을’이 돼 한국 사회가 인권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