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주교회의 사형폐지소위원회가 주최한 사형폐지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금태섭(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공판 진행 검사 시절, 기소 검사가 구형한 사형과 무기징역 공소장이 이해가 안 돼 사형과 무기징역이 바뀐 것 같다고 했더니, 기소 검사가 머뭇거림 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바꿀까요?” 이후 금 의원은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쉽게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교도소와 구치소에 있는 사형수 61명의 판결문을 모두 읽어보고 있는데, 검사 출신인 자신도 여전히 형량에 있어 구분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형이 범행 좌절과 범죄자 교화 측면에서 정당성이 없다는 것은 실제로 입증되고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사형에 대한 검사의 판단은 법적, 제도적, 의식적으로 너무 허술한 게 현실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 권력의 폐단도 있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무책임한 판결이 더 큰 문제이다.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1997년 이전에는 한 해에 20명 정도 사형이 집행됐지만, 지금은 사형 선고가 아예 없거나 많아야 고작 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갑자기 착해진 것일까? 지금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 사람이 1990년대에는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당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절대적인 형벌이 시대에 따라, 또 검사 개인에 따라 아무런 고민 없이 바뀌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사형제 폐지 주장이 가해자에 대한 조건 없는 용서와 범죄 피해에 대해 무책임한 대응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이고 바로 사회정의다. 시대적 여론과 가치관이 변하면 형벌도 변할 수 있다지만 ‘생명권’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다. 국가가 생명을 침해하면서 생명 존중과 인권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생명을 빼앗지 않고 정의를 이룰 수 있는 책임 있는 범죄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우리 모두의 깨어 있는 의식 개혁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