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상·하원 의회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미국 행정부가 대사관을 1999년 5월 31일까지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는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단,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6개월마다 대통령이 유예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클린턴, 부시,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올 6월 1일 법안 준수를 유예했다. 그런데 6개월 시한이 다해 다시 결정의 시간이 돌아오자 지난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고, 대사관 이전 작업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영원한 고향이라고 여기는 예루살렘은 로마에 대항한 1차 독립 전쟁(66∼70년)에서 파괴되고, 2차 독립 전쟁(132∼135년)에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개명되는 수모를 겪은 곳이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비롯해 유다인들이 살던 지방 이름도 시리아 팔라이스티나 속주로 바꿨다. 이 지역은 로마 지배를 거쳐 638년 아랍인들이 장악한 후 십자군 전쟁 때만 제외하고 1917년 12월 9일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까지 1300여 년 동안 무슬림들이 지배했다.
영국은 지배지에 평화를 일구지 못하고, 오히려 유다인들의 귀향길을 열어 줌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로마에 패한 후 고향을 떠나야 했던 유다인들이 솔로몬 성전과 제2 성전이 있는 ‘시온’,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나라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를 선포했는데, 영국이 이를 들어준 것이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유다인과 아랍인의 땅 분할을 가결했지만 무슬림들이 거부했다. 영국은 이렇다 할 평화안을 내놓지도 못한 채 1948년 5월 14일 자정을 기해 이곳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고, 당일 오후 4시 이스라엘은 영국 몰래 독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시작됐다.
1차 전쟁의 결과 예루살렘은 둘로 분할됐다.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아랍인, 더 정확하게는 요르단이 차지했다. 동예루살렘은 구시가지가 있는 곳으로, 유다인들의 솔로몬 성전, 제2 성전이 세워졌던 성전산이 있다. 성전산에는 이슬람의 예언자가 천상 여행을 한 유적이라고 무슬림들이 믿는 바위돔성원과 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그래서 ‘고귀한 성소’라는 뜻인 알하람 앗샤리프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수난처로, 십자가의 길, 골고타산, 성묘성당이 있는 곳이다. 성전이 장사치들의 소굴로 전락한 모습을 보고 분노한 예수가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신” 곳이기도 하다.(마르 11,15) 과거 선배 신앙인들은 예루살렘을 라틴어로 ‘세상의 배꼽(Umbilicus mundi)’이라고 부르며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 지도를 그렸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해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1980년 이스라엘 의회는 ‘영원히 분리되지 않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했으나 이에 반발한 국제사회는 당시 13개국 대사관을 모두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에는 단 한 나라의 대사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얻은 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확실히 섰으니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나 오바마와 달리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한 약속을 지켰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국제법을 무시하고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한 것이 문제다. ‘세상의 배꼽’이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성전은 사라졌지만 장사꾼들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