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45년 9월부터 미국의 점령지 구제기금으로 식품ㆍ의류ㆍ의약품 등을 원조받았다. 미국 공법 480호에 따라 1956년부터 받은 구호물자에서 밀가루는 ‘악수표 밀가루’로 불렸다. 포대에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 악수하는 두 손이 인쇄돼 있었다. 그 밀가루 포대로 교과서를 싸는 학생도 많았다. 공법 480호 원조는 1981년에 종료됐다.
우리나라는 2009년 11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이 됨으로써 원조받는 처지에서 원조하는 처지로 바뀐 사상 첫 번째 나라가 됐다. 2016년에는 19억 6000만 달러 원조를 제공해 30개 회원국 가운데 16위였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0.14로 개발원조위원회 국가 평균(0.3)이나 유엔이 정한 목표(0.7)에는 못 미친다.
“그 무렵 눈이 파란 신부님이 태어난 나라 사람들이 안 쓰고 못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성당으로 보내 주었답니다. 그걸 구호물자라고 했지요. … 성당에 가면 버터 깡통도 주고 깡통 초콜릿도 주고 분유 깡통도 주었으며 깡통 사탕도 나눠 주었습니다.” 성석제는 소설 「아름다운 날들」에서 “구호물자와 전혀 관계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가 최인호는 묵상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에서 부산 피란 시절 처음으로 교회에 나간 자신에게 성탄절 때 받은 구호물자가 하느님이었고 예수님이었다고 말한다. 1950년대 중반 노기남 주교는 해외 교회의 원조에 감사하고 더 많은 원조를 당부하러 미국과 유럽으로 출국하곤 했다. “노기남 주교는 미국 천주교회의 원조에 감사하는 동시에, 각지를 순회하면서 한국 실정을 호소하여 미국 시민으로 하여금 우리 실정을 재인식시키고 금번 귀국하는 것.”(경향신문 1955년 2월 11일자)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1993년 1월 마지막 주일부터 2차 헌금을 실시했다. 해외 원조 주일의 시작이며 우리 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바뀐 계기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해외 원조를 총괄하는 한국 카리타스는 2016년 51개 사업에 약 48억 6000만 원을 지원했다. 약 11억 원은 북한을 돕는 데 쓰였다. 이 밖에도 해외 원조 시행 기관이 적지 않다. 2017년 한국 카리타스 주관 해외 원조 네트워크에만 8개 기구와 10개 수도회·선교회가 참여했다.
교회의 해외 원조가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예컨대 전문 인력 확충이다. 해외 원조 전문가가 없는 기관·단체가 많고, 있더라도 소수이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나라의 해외 원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둘째로 지역·국가별 특수성에 바탕을 둔 맞춤형 원조다.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에 ‘야훼 이레’라는 말이 나온다. ‘주께서 필요한 것을 살펴 채워 주신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그 밖에 원조의 효과성을 더욱 높이고 안정적인 재원을 확충하면서 원조 규모를 늘려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교회와 신앙인들의 관심일 것이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의 울림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돼야 합니다.”
교황이 지난 11월 19일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발표한 담화의 제목이 성탄절의 참뜻을 되새기게 만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