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를 나와 양화진길을 걷는다. 역에서 700m 걸으면 절두산순교성지다. 25년 전 예비신자 교리반 일행과 함께 찾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상(像) 앞에서 기도한 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을 둘러봤다. 합정역으로 돌아가 2호선을 타고 신촌역에 내려 서강대학교로 갔다.
서강대학교 교정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를 기리는 순교현양비가 있다. 새남터에 버려진 세 성인의 유해를 교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수습하여 오늘날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에 안장했다. 4년 뒤 삼성산(관악구 신림동)으로 옮겨졌다가 1901년 명동성당에 안장됐다. 1866년에 순교한 두 성인 전장운 요한과 정의배 마르코의 유해도 노고산에 안장됐으니 예수회 서강대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이제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가서 효창공원앞역에 내렸다. 역에서 약 15분, 1㎞를 걸으면 당고개순교성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10명이 순교한 곳이다. 순교자 가운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도 있었다. 당고개순교성지는 지역 재개발로 2008년 철거됐다가 2011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성당과 전시관이 있고 옥상에는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돼 있다.
다시 효창공원앞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갔다. 용산역 1번 출구로 나와 1.2㎞, 20분을 걷는다. 새남터순교성지다. 성지 안 새남터 기념 성당은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에 3층 탑을 올린 외관이다. 성당 안 기념관에는 순교자 동판화, 성인 유해실, 박해 당시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 등이 있다. 이상은 사순 제2주일 2월 25일에 지하철로 떠난 나만의 순례길이다. 새남터순교성지를 나와 잠시 고민했다. 서울역으로 가서 중림동약현성당과 서소문순교성지도 방문할까? 용산역에서 한 정거장 간 뒤 10여 분 걸으면 되지만 다음 주일을 기약했다. 한 번 나선 길에 너무 많은 곳을 찾다가 주마간산(走馬看山)에 그칠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소중한 곳은 아껴 봐야 한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인 3월 29일 전까지 가급적 매 주일 성지를 찾고자 계획했다. 앞으로 서소문순교성지, 왜고개성지, 삼성산성지, 그리고 사는 집에서 차편으로 30분 걸리는 남양주 마재성지가 남았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 하남의 구산성지, 경기 광주의 천진암성지와 남한산성순교성지 등도 찾아보고자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일명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드물지 않다. 순례길은 아니지만 제주 올레길, 서울 둘레길, 한양 도성길, 지리산 둘레길, 그밖에 전국 각지에 둘레길과 올레길이 조성됐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십자가의 길 14처에서 볼 수 있듯 신앙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늘 걸으신 분, 길 위의 예수님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이 올해 10월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에서 세계 공식 순례지로 선포될 예정이다. 27.8㎞의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의 주요 순례지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가회동성당, 광화문광장 시복터, 서소문 역사공원 및 순교성지, 당고개ㆍ새남터ㆍ절두산 순교성지 등이다. 이번 선포를 계기로 각 지역의 성지와 교회 관련 주요 지점들을 잇는 길들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