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막을 내린 지 두 달이 지났다. 북한은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해 55구의 미군 유해를 송환했고, 서해 평북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연일 북미 정상 간 신뢰를 강조하며 ‘김정은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다. 그런데도 ‘신발을 신은 채 발등을 긁는’ 듯한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비핵화 절차를 둘러싼 가시적 조치들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지체되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 선언으로 돌아가 보자. 합의문은 1항이 북미 관계 개선, 2항이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3항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이 북미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는 증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확인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김정은의 친서는 달랑 네 문장뿐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김정은은 ‘조미 관계 개선의 획기적 진전이 우리들의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주리라고 확신한다’고 적었다. 관계 개선 없이 트럼프가 공언한 두 번째 정상회담은 없다는 배짱으로도 읽힌다. 비핵화 이야기는 없었다.
최근 종전 선언을 둘러싼 북미 간 공방전에는 이런 배경 요인이 깔렸다.
북한은 정상회담 합의의 1번 항목인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해 종전 선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 없이는 종전 선언은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종전 선언’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고 비핵화라는 목표 지점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종전 선언의 성격과 역할, 종전 선언 이후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해 남북미 당사자 간 조율을 해나가되, 이를 비핵화 신고 및 검증 과정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 종전 선언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전혀 좋지 않다는 점을 살필 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모험에 나설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중간선거 결과가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11월 이전에 숨겨 놓은 ‘히든 카드’를 섣불리 내놓을 이유는 없다.
우리 정부의 희망대로 9월 말 유엔 총회를 계기로 북한이 참여하는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시기를 정해 놓고 벌이는 협상이 패를 보여주고 치는 카드 게임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저술한 「황제전(De vita Caesarum)」에 나오는 이 말은 로마제국의 전성기(Pax Romana)를 이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이다. 2000년 전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