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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장군(오른쪽)과 김경태 선수.
이장군 선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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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바디 경기 장면. 이장군 선수 제공 |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카바디(Kabaddi)’는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인도 국기로, 우리나라의 태권도에 견줄만하다. 인도에선 우리나라의 야구나 축구만큼 인기가 많다.
카바디, 박진감 넘치는 경기
카바디는 힌디어로 ‘숨을 참는다’는 뜻. 공격자가 숨을 참고 상대 선수의 몸을 터치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자(레이더)가 ‘카바디’를 외쳐야 한다. 국내 언론에서 카바디를 종종 술래잡기나 오징어 게임에 빗대지만, 럭비 이상으로 거칠고 격하다. 협동심과 민첩함, 체력, 두뇌 회전을 동시에 요구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카바디 선수들은 금메달만큼 갚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란에 패배하며 금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종주국이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인도를 꺾어 돌풍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카바디 선수라야 사실상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12명이 전부인 상황에서 이뤄낸 주옥같은 결실이다. 이러한 결실 뒤에는 두 명의 천주교 신자 선수의 맹활약이 있었다. 국가대표 주장 이장군(미카엘, 26) 선수와 동갑내기 단짝이자 동료 김경태(바르나바, 벵갈루루불스) 선수다.
이장군은 “대회 1주일 전에야 선수들이 모두 모였는데 심각한 부상을 당한 선수가 많아 경기 전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면서도 “부상에도 열심히 뛰어준 동료들 덕분에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딴 바 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메달 색깔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비록 비인기 종목이지만 우리나라의 ‘효자종목’이다.
인도 카바디 프로리그 ‘벵갈워리어스’에서 놓칠 수 없는 주전 레이더로 활약하는 이장군이 카바디를 알게 된 것은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고3 때였다. 당시 신장 질환을 앓던 아버지의 병원비로 인해 집안이 어려워지자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어 비교적 돈이 덜 드는 카바디를 선택한 것이다.
이장군은 “원래 축구를 좋아했고, 유도와 조정도 해봤지만, 카바디를 접한 뒤로 (카바디) 매력에 푹 빠졌다”며 “늘 미안해하시던 부모님이 카바디 선수가 된 저를 자랑스러워하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수줍게 웃었다. 인도에서 이장군은 국가대표급 선수로 늘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유명인사다.
복사단 출신 두 선수
김경태는 이장군 덕분에 함께 카바디를 하게 됐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처음 만났다. 첫 영성체를 같이 받고 복사단에서 함께 활동했다. 중고등부 시절엔 본당 중고등부 밴드에서 함께 드럼을 쳤던 절친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신앙을 통해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이 같은 종목 국가대표 선수가 돼 함께 경기에 출전하고 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건 놀라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김경태는 “아버지는 신자가 아니셔서 새벽 미사 때 저를 성당에 데려다 주느라 짜증을 내셨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지금은 10년 전 세례를 받으시고 집안에서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다”고 웃었다. 두 선수에게 바람을 물었더니 다르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 카바디가 국내에서 인기 종목이 되길 희망합니다.”(이장군)
“우리나라에 카바디가 더 알려졌으면 해요. 목표는 카바디를 전국체전 종목으로 만드는 거예요.”(김경태)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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