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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노년의 영성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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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본당에서 해외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데 92세 어르신께서 순례단에 포함돼 함께 가시게 되어 일행 모두 내심 걱정했었다. 하지만 어르신께선 오히려 젊은 사람 못지않게 모든 일정을 건강히 잘 소화해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놀라워했다.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 어르신들 중에는 건강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한창 바쁜 인생을 살고 있는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맞으면서도 건강하게 지내며 많은 강연을 소화해내고 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백세를 살아보니까 인생의 골든타임이 65~75세”라고. 이 나이 세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장례미사 강론에서도 돌아가신 분의 나이가 70대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안타깝다는 위로의 말을 한다. 이제 어르신들이 옛날과는 달리 인생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식과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노년기에 어떠한 의식과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영원한 젊음’을 누리려는 욕망이 있는 한 미성숙한 허무한 인생이 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엇이 되기를 그만두는 일’을 할 때 즐거운 인생이 된다고 한다.

「황혼의 미학」(2015)의 저자 안셀름 그륀 신부는 ‘무엇이 되기를 그만두는 일’이 영성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년의 영성은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건강, 더 나아가 분노와 복수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지향해야 함을 「주름을 지우지 마라」(2013)의 저자 이제민 신부 역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제민 신부가 그의 저서에서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소설을 소개한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다. 주인공 백작은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복수는 가능했지만,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옛 여인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음을 지적한다. 노년에 가져야 할 태도는 화해와 용서,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통해 은은한 사랑, 오래가는 사랑, 참고 기다리는 사랑이다.

노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면에서 황혼의 인생이다. 그러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면에서 바로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게 된다.

필자가 부제일 때 원목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과 건너편 가톨릭평화방송 건물은 성모병원 자리였다. 특히 가톨릭평화방송이 있던 자리의 병동은 진폐나 규폐 환자들이 머물던 곳이었는데, 그 병동 환자 대부분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임종하는 환자들을 여러 번 보았다. 어떤 환자는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며 세상을 떠났다. 반면에 어떤 환자는 죽음을 거부한 채 거의 발악을 하다 죽은 경우도 있었다. 죽음을 거부한 임종자는 십자가를 던져버리고 사람들에게 욕을 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러한 환자를 보면서 사람들이 선종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음을 적극적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노인은 천국 갈 날이 엄마 남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천국을 맞이하는 존재요, 천국을 맞이하기 위해 평생 기다림과 인내를 몸에 익혀온 존재다. 그러기에 죽음은 인생을 끝내는 시간만이 아니라 완성하는 시간이다.

죽음이 인생을 완성하는 것은 죽음이 현재의 의미를 찾아준다는 뜻이다. 현재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원성을 체험하는 사람이며, 늘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년을 평정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활기차게 살 수 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가까이서 체험하면서 삶과 죽음 사이의 시차를 그만큼 좁히는 것이고, 따라서 영에 따른 삶에 가까워지는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노년의 영성이 아닐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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