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역사상 236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성당이 잠정적으로 폐쇄되고 미사가 중단된 지금, 매우 바쁘게 지내왔던 한 본당의 사목자에서 이제는 3주 가까이 ‘방콕러’로 지내는 중이다. 더군다나 사순 시기임에도 어떠한 공적 전례도 하지 못한 채 다만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방에만 있어서 답답하지 않나요?” 어느 신자의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너무 잘 가고 있다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 혼자 방에서 지내는데도 하루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게 주어진 일종의 ‘사순 피정’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성무일도와 미사를 드리고, 신문과 책을 읽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인터넷도 하고, 성경 필사도 하다 보니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가장 좋은 점은, 고요와 침묵 속에 쉼이 이루어지니 몸도 마음도 영혼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크지만 신자들을 빨리 다시 만나 성무집행을 하고픈 바람도 숨길 수 없다.
매일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사망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확산되고 있어서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혐오와 배제라는 바이러스다.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고 혐오를 부추기며 배제를 합리화한다.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약화시키거나 유보하는 안전 중심의 정책이나 사고방식이 이를 부추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거주자가 밖으로 못 나오도록 주민들이 현관을 각목으로 막고 못질을 했다는 해외뉴스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대학 주변에 자취방을 얻어 입주하려 했더니 건물주가 갑자기 “방을 비워 달라.”고 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는 경상도 출신 학생이라 꺼림칙하다. 자취방과 붙은 아래층의 점포세까지 떨어지면 어떡하느냐”며 나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혐오와 배제의 정서는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해치고 파괴하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우리 일상 안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보건 예방 수칙이 오히려 이웃을 차별하고 혐오하거나 배제하는 기제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어느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 특정 국가를 손가락질 하고, 공격하고, 봉쇄하는 폭력을 가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유전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타주의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하는 유전자도 있기에 인간은 오랜 세월을 존재한다. 현재 고통받는 대구지역에 대한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자 전국에서 개업의들이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달려가고, 간호사들도 그 뒤를 잇기도 한다.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구호물품들이 답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광주의 기관장들과 주요 단체들이 한마음으로 대구지역의 경증환자들을 받아 치료를 돕고 있다. 영호남을 대표하는 대구 달구벌과 광주 빛고을의 앞 자를 딴 ‘달빛동맹’이 더욱 빛난다. 다른 지역에 있는 대형병원들도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고, 종교계에서는 연수원이나 피정의 집을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서로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공동체 의식을 각인시킨다. 연대와 나눔, 그리고 돌봄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공동체만이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연대와 나눔과 돌봄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는 예수님의 이웃 사랑을 구체화한다. 특히, 타자, 외부인, 다른 사람도 이웃으로 따뜻하게 환대하는 분위기에서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타인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실현일 것이다. 가톨릭 명저 (2008)에 등장하는 주인공 치점 신부는 중국 선교지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그곳을 떠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돌보고 보살펴준다. 이러한 희생적인 행동으로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는 ‘현존의 복음화’를 보여준 그는 또 하나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기억된다. 비록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언제 꺾일지 모르는 불안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날을 기다려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