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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생명을 파괴하는 갑질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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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사건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파트 입주민 한 사람이 경비원을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고 협박을 했고, 이에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유서에는 억울함을 풀길이 없다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갑질’의 결과라 하겠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갑질문화로 인해 을에 대한 갑의 차별과 배제,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한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약 8분간 목을 조여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흑인은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을 11번이나 했지만 안타깝게도 숨지고 말았다. 그 백인 경찰은 즉각적으로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는데, 미국 전역으로 흑인사망에 따른 분노와 시위가 격화되고 있어 군인들을 투입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미국인데, 이제는 인종차별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인해 더욱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 사건 역시 백인 경찰이라는 갑이 흑인 범죄자라는 을에게 가한 갑질에 해당한다. 범죄자가 백인이었다면 과연 그 경찰이 똑같은 태도를 취했을까?


위의 두 사건은 갑이라는 가해자가 을이라는 피해자에 대해 인간의 생명을 매우 경시한 반생명적 행태라는 갑질, 그것도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으로 드러났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아파트 경비원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타살인 반면에, 흑인의 죽음은 직접적인 살해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모든 갑질의 근본은 갑과 을의 관계를 수직적 권력구조로 잘못 인식하여 을에 대한 갑의 ‘타자화’에 있다. 타자화를 통해 아파트 입주민은 경비원을 윽박지르고 심지어는 협박까지 가했던 것이고, 백인 경찰은 흑인을 인종차별하여 폭력을 써도 상관없는 대상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타자화는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기 때문에 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물건으로 취급하게 된다. 남을, 이웃을 타자화하는 갑질의 가장 극단적인 행위는 폭력과 살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반생명적인 죽음의 문화일 수밖에 없다.

죽음의 문화에 속하는 갑질은 남을 타자화하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교만은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를 절대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은 죄와 악을 낳게 되고, 죄는 죽음을 낳게 된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존재는 오로지 하느님뿐이다. 자기를 절대화하고 신격화하는 교만한 사람이 남을, 이웃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런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원죄 자체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아담과 하와의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보여준 바벨탑 사건 역시 하느님처럼 되고자 했던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되었고, 자신들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한 결과 언어의 혼돈, 분열, 대립, 갈등 등으로 삶이 피폐화되고 죄스런 상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류는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의 추동으로 죄의 역사이며 동시에 은총의 역사를 서술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새겨들어 죄와 죽음으로 가는 어리석은 길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의 지혜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처럼 남을 섬기는 존재가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을 흉흉하게 하는 갑질의 대안이다. 신앙인에게 갑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을이 되기를 원해야 한다. 허리띠를 매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스승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설탕과 소금은 분명 다르다. 설탕은 자기 맛을 내려 하지만 소금은 자신이 녹으면서 남의 맛을 내어 준다.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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