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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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대답을 사는 삶(임선혜, 아녜스,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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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피츠버그에서 말러의 4번 교향곡을 녹음할 때였습니다. 몇몇이 함께 녹음본을 듣고 의견을 나누던 중 지휘자가 갑자기 양해를 구하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한 시간쯤 지나 그가 돌아올 때까지 모두 태연하게 휴식을 취할 뿐이었습니다.

오전 일정이 없던 다음 날엔가, 마침 숙소 근처의 성당에 매일 정오 미사가 있다길래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거기서 성체를 모시고 나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도 그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뜬 것이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맡으며 미사 시간 배려를 약속 받았다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묵주기도는 물론 매일 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연주여행 중에 낯선 나라와 도시에서, 가까운 성당과 일정에 맞는 주일 미사를 찾기도 보통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닌데,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대륙을 수없이 횡단하는 그가 미사를 매일 드린다니!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신앙을 가진 음악가 찾기는 모래밭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성당에 나가는 것이 몸에 배긴 했지만 얕은 믿음에, 의심도 많은 저는 신기한 사람을 만난 듯 물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도 결국 비즈니스가 아닌가. 분명 성공으로 가는 길과 신앙에서 가르치는 바가 충돌할 때가 있을 텐데, 그런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하느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차분하면서도 명료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타고난 재능이 있어 음악가가 되었으니,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최대한 잘 펼쳐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보다 뛰어난 오케스트라들과 작업을 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하늘에 가면 그분은 내게 무엇을 물어보실까? ‘너 베를린 필 지휘해봤어? 밀라노 스칼라극장은 몇 번이나 서 봤지? 뉴욕엔 못 갔구나!’ 과연 그러실까? 아닐 거다. 나는 그분이 물어보실 질문에 대한 답을 살려고 한다.”

눈과 머리가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현실 속의 딜레마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아주 명료한 기준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세상 마지막 날에 만나리라 확신하는 그분, ‘하느님과의 대화’였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지휘자이지만 어떤 것이 그의 음악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지, 그 비밀을 알아낸 듯 기뻤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탈렌트를 그걸 허락한 분의 방식으로 열 배, 스무 배로 불리는 진정으로 멋진 음악가의 존재가….

자신의 남다른 신앙생활이 종종 비웃음을 산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에 저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물어보실 것에 대한 대답’을 살아볼 용기를….

다음 날 미사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그와 멀찍이서 나마 아주 특별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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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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