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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진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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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뒤통수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경험을 했다. 한 대학원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과 그 이후’란 주제로 학생들에게 수업 과제물을 내주었는데, 한 학생은 교회의 미미한 대응과 우리의 타협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즉 교회는 세상 속에 묻혀 타협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따라올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함에도 그 대응이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양심은 몹시 불편했지만 동시에 교회도 제구실을 못 하고 있음을 꼬집어 주었기에 통쾌하기도 했다.

낙태는 절대로 쉬운 주제가 아니다. 임부와 태아의 현재와 미래가 직결되어 있어서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논의가 끊이지 않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 또한, 낙태를 난제로 생각하는 이유는 위 학생의 지적처럼 현재의 흐름 안에서 우리는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양심이 매우 불편해지면서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혼란과 복잡성을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복음」 제58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양심 속에서 이에 대한 감지능력이 점차로 흐려지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마음 안에서, 행동 안에서, 그리고 심지어 법 안에서조차 낙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도덕적인 판단력이 지극히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말해 주는 징표입니다. 이 도덕적인 판단력은, 심지어 생명에 관한 기본적인 권리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조차 점점 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진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며, 편리한 타협이나 자기기만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사물을 그 사물의 고유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다시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라는 복음 말씀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갈등은 ‘예’와 ‘아니요’ 그 중간쯤을 말하면서 세상의 비난과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 허용은 마치 대세적 흐름으로 비추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이상하거나 신뢰할 수 없으며 때로는 우리 사회 특히 여성에게 반역적인 것으로까지 간주한다. 이러한 왜곡된 시선에서 우리는 ‘낙태죄 폐지’가 마치 여성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리라 착각하고 있다.

또한, 태아의 생명 존중 운동을 여성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겪었던 “약자에 대한 강자의 싸움” 그리고 그것을 용납한 죄의 구조를 답습하는 것이다. 즉 “사회가 생명에 반하는 행위들을 용인하고 조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을 거스르는 실제적인 ‘죄의 구조들’을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죽음의 문화’를 고무하고” 있는 것이다(「생명의 복음」 제24항).

우리는 ‘진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곧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인하여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정부는 태아 생명의 법적 보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낙태가 만연하는 이유는 생명존중사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임부와 여성에 대한 존중사상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태아만을 살리는 것도 여성만을 살리는 것도 아닌 두 생명 모두를 살려야 한다. 이것이 법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에 우리 교회 구성원들 각자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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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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