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집콕, 방콕 등으로 제약을 받으며 자기만의 시간은 확장되고 있다.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고 운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고 반복 가능한 활동으로 채우려는 성향이 트렌드화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라클 모닝’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 운동, 명상, 외국어 공부 등을 비롯해서 물 1ℓ 마시기나 이불개기 같이 아주 사소한 행위 등에 이르기까지 매일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요즘은 이것을 ‘루틴’이라 부른다.
‘루틴’은 원래 운동선수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하는 습관적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매일 일정하게 반복되는 연속 동작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루틴은 틀에 박힌 일이고, 지루하고 무료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는지 보여주는 자기관리이자 자기표현을 위한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조금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자기만의 루틴을 구성하게 된다면 일상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자신이 정해놓은 루틴이지만 작심삼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등장한 것이 ‘챌린저스’ 앱들이다. 이러한 앱들의 목적은 이용자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중에 어떤 앱은 소정의 가입비를 내고 일정기간 정해진 루틴을 실천하여 목표를 달성하면 그 가입비가 반환되지만 실패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금으로 보내게 되어 매우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매일 자신의 루틴에 대한 인증샷을 보내는 수고로움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인증샷이 자신의 루틴을 지속적으로 하게 해주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 시도해보기를 권유한다.
무엇보다도 루틴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일상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지, 루틴을 통해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가 드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구별과 차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은 비닐봉지나 일회용 용기를 받지 않고 에코백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이용한다. 일상 안에서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행위가 루틴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신음하는 지구를 살리려는 환경지킴이로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아침에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을 위한 지식 습득이나 교양을 쌓기 위해 독서를 한다. 그러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신자들은 매일 성경을 읽거나 필사하기도 하고, 기도를 꾸준히 바치며 자신만의 특별한 시간, 거룩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루틴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본당 새벽미사에 나오는 신자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새벽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신자들 중에 구순을 바라보는 어르신 한 분을 소개한다. 그분은 오래전부터 새벽미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셨는데, 적어도 2시간 전에 미리 와서 성당 마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바치신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상관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십자가의 길과 새벽미사는 빠지지 않는다. 그분에게는 그 루틴이 인생의 즐거움이고 신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분은 모두가 부러울 만큼 건강하고 기억력이 매우 좋아 옛날 동요를 3절까지 외워 부르신다.
반평생을 사업가와 시인으로 살아오신 그분은 이제 남은 일생 모두를 하느님께 매일 봉헌하며 행복하게 사신다. 내년 초에 그분의 구순을 축하하는 미사를 해드리겠다고 약속을 하니 해맑은 얼굴을 하며 기뻐하신다. 결국 모든 신앙인들에게 루틴을 통해 드러나는 최고이며 최우선의 자기 정체성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닐까? 신앙생활의 루틴이 자연스레 일상 안에서 실천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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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