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긴 시간을
묵묵히 타박타박
내 발자욱만 따라 짚으며 걸어 와 준
내 님의 사랑은,
서툴고 더딘 내 행보에 지쳐
재촉하며 앞서
잡아 끌 수도 있었으련만,
답답한 숨 소리 한 번 내지 못 하고
가끔 스치는 바람으로
가슴앓이만 하던
머저리 사랑.
그 사랑이
석양같은 내 삶 속에
긴 잔영을 남긴다.
어느 새 장년이 되어버린
내 아들 딸의 옛 모습 뒤에도
밤 새 술잔을 기울이며 호기를 부리던
젊은 날의 남편의 등 뒤에도
어김없이 새겨져 있는
그 님의 숨 죽인 가슴앓이를
이제야 내가 끌어 안는다.
주고 또 퍼주어도 목마른 사랑,
십자가 가시관 사랑으로
너덜너덜해진 가슴팍
그 시린 사랑이
일몰 해가림의 타는 핏빛 구름속에서
나를 찾는다.
사랑이었어라
맘 놓고 드러낼 수도 없는
참으로 아픈 사랑이었어라
내 님의 사랑은…
혈관 속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흘러도 보이지 않는
행해도 표나지 않는
참으로 바보같은 사랑이었어라
아픈 사랑이었어라
내 님의 사랑은…
박명순 (드보라·제주교구 신창본당 조수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