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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평화의 중재자, 평화의 담보자 / 황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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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인 쿠바가 기꺼이 소련의 미사일 주둔 기지가 돼 미국을 겨냥했고, 미국 역시 쿠바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내정간섭을 시도했다. 냉전이 해소된 이후에도 미국과 쿠바 간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 양국 모두 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불신이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도 국경 분쟁으로 전쟁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양국 국경지역인 비글해협과 그 주변 도서를 놓고 갈등과 반목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누가 이 지역의 영유권을 갖게 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국제사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는데 7년여 시간이 소요됐다. 비글해협과 근처 섬의 영유권은 칠레에 속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아르헨티나는 이에 불복하고 전쟁까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두 가지 분쟁 사례를 해소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행위자는 다름 아닌 가톨릭교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와 관계개선을 하고 싶다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요청을 받고 여러 차례 쿠바에 특사를 파견했으며, 양국의 화해를 바란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사이의 분쟁 해결을 위해 양국이 로마에서 협상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칠레가 해당 지역을 점유해도 두 국가가 함께 통제하는 비무장평화지대로 관리한다는 선언문을 이끌어 냈다.

두 교황은 평화의 중재자로서 쿠바와 미국 관계 개선의 보증인 역할을 자임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칠레 군부마저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리더십을 발휘했던 셈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촘촘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토대로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인류가 맞닿은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며,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기존의 규범이 해체돼 가는 혼란한 시대에 윤리적 기준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세상의 그 어떤 국가보다, 어떤 지도자보다 말과 행위의 무게가 무겁다고 신뢰받는 교황의 움직임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남북한 지도자 간 이뤄진 합의가 무색해진 경우나 북핵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체결된 북미 간 합의서가 무용지물이 돼 온 과정을 여러 차례 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북 및 북미관계가 전면적으로 개선될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진전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제3의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 또는 담보자가 필요한 시기, 나는 교회를 떠올려 본다. “한반도의 여러분과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프란치스코 교황 서한, 2020년 10월 23일) 교황님을 위해 기도한다. 다른 분쟁 사례에 교회가 개입한 것처럼, 마지막 냉전 지역인 한반도에도 교회의 관여가 있게 해달라고.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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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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