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423번지는 성매매 집결지로 60년 동안 존재해왔습니다. 빈곤한 여성들의 몸이 자본으로 착취됐고, 성매매 여성들은 돈이라는 권력 앞에 성적 학대와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도 업주에게 얽혀 그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2018년 화재사건으로 재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돼 지금은 대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는 남김없이 밀어버렸고, 자취 없이 사라졌어요.”
15일부터 강동구립 북카페 다독다독에서 ‘천호동 423번지 성매매집결지 여성인권역사 아카이브 전시회’를 열고 있는 소냐의 집 소장 홍성실(루치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는 “나쁜 일도 역사”라면서 “여성차별과 인권침해의 공간이었던 이곳을 흔적도 없이 밀어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인권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해놔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냐의 집은 1993년부터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인근에서 성매매 피해여성을 지원해온 상담소다. 집결지뿐 아니라 유흥업소나 맥ㆍ양주집에서 성매매 착취를 당하는 여성들의 탈업과 자립을 돕는다.
“우리 수녀들과 직원들은 집결지 폐쇄를 기다리면서 역사가 될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여성인권이 유린당하고 착취되었던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죠. 전임 수녀님이 구청에 인권역사에 대한 전시 공간을 제안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어요. 구청장님을 만나면 바닥에 돌이라도 깔아달라 하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기록, 시간을 기억하다’를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1963년부터 2020년까지 마지막 업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좁은 방 안에 갇혀 성매매라는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들의 삶을 담아냈다. 한국여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오랫동안 천호동에서 살아온 시민기록가와 초대작가들, 청년 예술인들이 집결지라는 공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성매매 여성의 삶을 주제로 담은 영상을 비롯해 집결지의 변천사를 담은 영상 등을 제작했다. 성매매 업소의 내부 구조를 그대로 딴 축소 모형도 만들었다. 집결지에 들어가는 골목도 재현해놨다. 성매매 집결지를 시각화한 모형 작품 등을 전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려는 취지다.
홍 수녀는 “성매매 여성들이 어떤 경로로 집결지에 왔는지 물어보면 남자친구와 지인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당장 생계를 보장받을 다른 일을 찾지 않으면 떠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천호동 집결지는 문을 닫았지만, 탈업하지 못한 여성들은 업주를 따라 유흥업소나 다른 성매매 집결지로 이동했을 거라는 게 홍 수녀의 추측이다.
홍 수녀는 “성매매 집결지는 폐쇄되어야 하지만, 그 공간에서 생활해온 성매매 여성들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면서 “전시를 통해 많은 분이 ‘성매매는 결코 없어져야 한다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21일까지다.
문의 : 02-474-0746, 소냐의 집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