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본당에서는 장례미사가 갑작스럽게 잇달아 봉헌되었다. 한 달 가까이 연령회 활동이 뜸했는데 이틀 사이로 세 분 어르신들의 예기치 못한 선종으로 부산해졌다.
수년째 요양원에 계시던 90세 된 자매님께선 가족들과 이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잠자는 중에 평온히 돌아가셨다. 자매님께선 우리 본당 관할지역에서 태어나 최근까지 살아온 토박이 중의 토박이 신자였다. 어릴 때 잠원동성당까지 그 먼 거리를 부모님 손을 잡고 주일 미사를 다니다 청수공소가 생기고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청담동본당 미사에 꾸준히 참례해왔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연령회 활동을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 금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미사는 출관예절이 있는 주일에서 하루 앞당겨 토요일 오후 입관 예절 후에 바로 거행되었다.
또 한 분은 노환으로 선종한 99세 어르신이다. 요즘 아무리 100세 시대라도 돌아가시는 분들 대부분이 80대 후반이거나 90대 초반이다. 그러니 99세라면 거의 백수를 누리신 분이라 장례미사는 호상 분위기로 흐른다. 이 어르신은 90대 중반까지 레지오마리애 회합에 나오시다가 나중에 장기 유고로 남아계셨기에 ‘레지오장’으로 예우를 갖추어 장례미사가 거행되니 보기가 좋다. 성당 좌·우측 통로에 세워진 쁘레시디움 깃발들이 마치 천상에서 자매님을 환호하는 듯하다. 고령임에도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였다니 얼마나 건강하게 지내셨는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남편은 자매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100세라고 한다. 부부가 100세가 될 때까지 77년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의 힘이요, 한 마디로 기적이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며 왠지 모를 기쁨과 감사가 절로 난다.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서 장례미사가 거행되었다. 오랜 기간 병치레를 해오다 병자성사를 받고 얼마 후 하느님의 품에 안긴 70대 후반의 고인이다. 80세를 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고인과 그 유가족을 맞이할 때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유가족은 병자성사를 받고 가셨다는 것에 큰 위안을 삼는 것 같다. 삶의 막바지에 와서는 거의 눈을 뜨지 않고 말을 잃어버리고 지낼 즈음 병자성사를 주고 성체를 영하게 했을 때 그분은 놀랍게도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아멘’ 하며 받아 모신다. 그렇게도 의식 없을 정도의 환자였는데 성체를 영하는 순간 병자성사의 은총이 예수님의 몸을 알아보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장례미사를 드릴 때마다 죽음의 묵상은 늘 달라진다. 그만큼 우리가 체험하는 죽음의 하위 범주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남긴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기억의 시간이며 영원한 삶과 이어주는 끈으로써 신앙을 확인하고 유가족과 통교를 다짐하는 순간이다. 과연 죽음 앞에 신앙의 힘은 대단하다. 신앙은 살아왔던 삶에 대해, 선종의 은총에 대해, 회개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함으로 표현되고 영원한 삶이라는 희망으로 향하게 한다. 비신자들조차 죽음을 앞두고 대세를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년 위령성월에 본당 추천도서로 신자들에게「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2019)이란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와 가족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영숙 수녀님의 절절한 호스피스 체험 사례들이 담겨 있다. 죽음 앞에선 인간의 진실한 모습들, 호스피스 병실에서 서서히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임종자들에게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배운다.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교사가 임종하기 전에 용서를 나누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자기 시신을 기증하고, 하느님께 드릴 선물로 가장 깨끗한 것이라고 여기는 백묵 한통을 손에 쥔 채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그 아름다운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오랜 세월 수많은 임종자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기도해주었던 저자 수녀님 역시 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기까지 투병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매개자’ 역할을 해온 것이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으면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를 상기하고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을 실천하며 매일을, 순간에서 영원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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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