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민족·화해·일치] 불파만 지파참 / 박천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불파만 지파참(不?慢 只?站). 느림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춤을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속도의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갑자기 느려지면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입니다.

보통 일의 진행이 늦어질까 걱정하는 나머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을 조언하기 위해 인용하는 문구입니다.

한반도 정세가 또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인 2017년만 해도 미국과 북한이 ‘로켓맨’, ‘늙다리’ 등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경고했습니다. 다행히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각종 정상회담을 통해 2019년까지 상황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 간 합의도 이행되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2017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 분들은 결과만 보고 과거의 모든 대화 노력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의 노력은 모두 의미 없는 몸짓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멈춰 있지 않았고 느리지만 조금씩 진전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싱가포르회담에서 천명한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의 정신은 남아 있고, 하노이회담에서 논의했던 비핵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논의의 전제도 남아 있습니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 간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데 대한 강한 불만이 연락사무소 폭파와 같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긴장고조까지는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느리게 진행되는 것들에 대해 불같이 성질을 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느린 것이 멈춘 것보다는 낫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본인이 처한 상황이 그 정도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이러한 모습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때 이 상황을 참지 못하는 국가에 대해서 해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느린 진행이 상대 국가에 대한 무시가 아님을 약속의 이행을 통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느리게 진행될지언정 멈추거나 후퇴한 모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문득 양광모 시인의 ‘멈추지 마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길이 멀어도/ 가야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02-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0. 4

3요한 1장 2절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