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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시기 피아노 삼매경, 국제 콩쿠르 연이어 입상

피아니스트 최은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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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멈춰 세웠을 때, 미국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최은향(프란치스카)씨의 삶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로서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2016년 미국에 터를 잡아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던 때였다. 뉴욕 시립대 음악학부 피아노 전문 연주자 과정을 밟으면서 어학 공부도 해야 했고, 생계를 위해 학생들도 가르쳐야 했다. 그동안의 경력과 자존심,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다 가서 강의하고 연주했다.

“1년에 쉬는 날이 며칠 안 됐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개인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죠. 그런데 코로나19로 집에만 있게 되니까 시간이 생긴 거예요. 정말 집중해서 피아노를 연습했어요. 그러다 보니 콩쿠르 입상도 하게 되고 여기저기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어찌 보면 코로나19가 제 인생을 바꿔놓은 거죠.”

그의 본격적인 콩쿠르 수상 경력은 지난해부터다. 1998년 대구 가톨릭대 피아노학과에 입학한 이후 25년 만이다. 그조차도 “이 나이에 무슨 콩쿠르야”라고 했지만, 그를 지켜봐 온 스승들은 그에게 “늦은 건 없다”며 도전을 권유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스페인, 호주, 캐나다 등에서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줄줄이 입상했다. 올해 3월엔 미국 카네기홀(7일)과 링컨센터(12일)에서 연주가 잇달아 잡혔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노력한 시간이 이제야 빛을 내기 시작했다.

“피아노는 취미로 치다가 고등학교 때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1년 재수하고 피아노 학과에 입학했죠. 남들처럼 예중ㆍ예고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많이 늦었죠.”

그는 대구 가톨릭대 졸업 후 러시아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에 돌아와선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주회를 열며 활동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현재에 안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해엔 뉴욕 메네스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에 합격해 배움의 길을 또 시작했다. 그는 “연주에서 ‘이만큼 했으면 되겠지’하는 것 없다”면서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연습해야 비로소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제 삶에서 신앙을 떼놓고 얘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딸이 피아니스트보단 수녀가 되기를 원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던 그에게 “성당 미사 때 반주를 해야 피아노 레슨을 시켜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집에선 항상 성당, 미사가 먼저였어요. 대학 스승님들도 모두 신앙 스승님이기도 했고요. 실력도 뛰어나고 유명하시지만 항상 기도하며 겸손하신 선생님들 덕분에 저도 연주자로서 늘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는 연주자의 길을 걷는 학생들에게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참고 견디다 보면 실력도 인격도 같이 성장한다고 했다. “어느 땐 그동안 쌓아온 걸 버리고 밑바닥부터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정말 힘들죠. 그래도 그걸 참고 견딘 사람만이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면 쉽게 포기하게 되는데 힘든 시간을 잘 받아들여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해요.”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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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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