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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봄봄봄을 기다리며(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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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대보름을 지내고도, 입춘과 우수를 지내고도 아직 겨울이다. 하지만 경칩이 지나고 곡우가 오면 아무리 동장군이 심술을 부려도 계절은 돈다. 봄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절기란 그런 것이고, 자연의 이치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라는 모순적인 옛말은 또다시 우리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렇다면 봄의 특징은 무엇인가?

봄은 따뜻하다. 언제나 봄을 떠올리면 어릴 적 학창시절, 입학식이 있거나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며칠 꽃샘추위를 견디면 교정과 통학 길,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쪼이고, 춘곤증으로 졸음이 사르르 몰려오며 새싹이 돋고, 나무마다 새잎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혔다가 꽃이 피는 과정을 보게 되었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2022년 다시 돌아온 계절에 우리 마음에 그 따뜻함이 있는가? 우리 공동체는 따뜻한가? 따뜻하지 않으면 아직 봄이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축제라는 대선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이 후보인가, 저 후보인가.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할 사람들이 국민을 이리저리 갈라친다.

대통령은 호칭이 거창하지 그 일은 사실 정원사, 가드너와 같은 것이다. 이 사회라는 숲에는 굵고 큼직한 나무도 있고, 나약한 풀도 있다. 우람한 꽃도 있고, 하늘하늘한 꽃도 있다. 시원해야 잘 자라는 식물, 더워야 신이나 열매를 맺는 식물도 있다.

한 마디로 다양하다. 이 다양한 개체들이 공존하는 정원을 저마다 개성에 따라 공정하게 성장하고 번식하고 살아가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 정원사를 뽑는 일이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으면 농사꾼이나 정원사가 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봄의 특성은 이미 말해버렸지만,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이 소생하고, 그 생명이 활짝 분출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올봄은 그냥 봄이 아니다. 무려 삼 년째 우리 삶의 터전을 침탈하고, 나라를 꽁꽁 옭아매고, 21세기에 그 어느 역사적 시기보다 긴밀하게 연대한 세계를 갈가리 분리한 코로나라는 가시덤불이 엄습했던 시기를 견뎌 터널의 끝자락에 서 있는 봄이다. 그러니 올해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농사는 여느 해의 농사가 아닌 것이다. 새로운 씨앗을 파종하고, 다시 인류가, 나와 내 가족이 새로운 미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힘껏 열어젖혀야 한다. 잃었던 것들을 같은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개척해야 하는 척박한 시대의 위대한 첫걸음이 절실한, 절박한 봄이다. 그 길을 탐색해야 하는 길잡이를 우리 중에서 뽑는 일이다. 그러니 우매해서는 안 된다. 영민해야 한다. 과거에 했던 방식을 답습하려는 이는 안된다. 창조적 파괴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소 암울하다. 우수하고 유능한 길잡이를 뽑아야 하는데 서로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 되면 공동체를 말아먹을 듯 이야기한다. 국민 주권자들에게 솔로몬의 지혜, 솔로몬의 판결을 요구하는 대선판을 만들어 버렸다. 권력이라는 아기를 칼로 둘로 갈라주랴?

이렇든저렇든 3월 9일 대선의 결과는 나온다. 시간은 흐르기에 결과는 나온다. 최악이냐 차악이냐가 문제이지.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처럼 4월이 잔인한 달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척박한 봄에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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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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