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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약자의 템포

전은지 헬레나(보도제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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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는 이탈리아어로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를 뜻한다. 빨리빨리의 원산지인 우리나라에선 빠른 일 처리가 미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상의 템포가 느린 이들이 있다. 노인은 발걸음이 느리다. 낯선 언어에 서툰 이주민은 말이 느리고, 장애인은 말과 행동 모두 속도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늘 빠름을 강요받는다. 건널목에선 경적이 울리고, 일터에선 혼나기 일쑤에다, 키오스크 앞에선 줄 뒤로 밀려난다.

인천의 한 중증 장애인생산품 공장은 친환경 사무용지와 화장지 등을 생산한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이곳의 생산 인력 90는 중증 장애인이다. 나머지 인력도 노인과 이주민으로 구성돼 있다. 생산직 전원이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생산 인력 모두가 약자라면 생산성이 떨어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공장의 생산품은 품질과 생산성이 우수하다고 업계에 정평이 났다.

기업 대표에게 꾸준한 성장 비결을 묻자, 윤기상(바오로) 대표는 “기다리기”라고 답했다. 분주해야 할 생산 공장이지만 그 누구도 빠른 작업을 강요하지 않는다. 윤 대표는 늘 관리자들에게 “작업자들을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이곳은 사람을 재촉하는 대신 장애 친화적 설비를 보강해 작업 속도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우리나라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 대다수는 약자를 바꾸려는 목적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장애인 교육, 노인 재교육, 다문화 교육…. 약자들이 적절히 교육받고 사회에 적응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회 적응은 쌍방적이다. 약자뿐만 아니라, 사회가 이들에게 적응하는 법을 고민해야 비로소 긍정적인 사회가 된다.

약자들에게 보내는 따듯한 마음은 좋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들의 느린 템포를 이해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앞으로는 약자의 템포를 기다리는 건 어떨까. 불협화음 없는 오케스트라의 템포는 다 함께 맞춰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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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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