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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인위적 동굴’ 유아실은 텅 비었는데…

이지혜 보나(신문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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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이 ‘영유아 삶의 복음화’를 주제로 영유아교육세미나를 열었다. ‘삶의 복음화’는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가장 완벽한 희망을 제시해주는 삶의 형태가 아닐까. 하느님의 자녀라면 삶의 궁극적 가치로 품어 안고 싶은 삶의 목표이면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영유아’는 3세 미만의 어린이를 칭하는 ‘영아’와 만 3세에서 초등학교 취학 시기까지의 어린이를 뜻하는 ‘유아’를 합친 말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들의 삶을 복음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이 아이들은 부모 없이 독립적으로 성당에 나올 수 없다.

팬데믹을 겪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성당들은 문을 다시 활짝 열었지만 활기가 예전만 못하다. 지난 3월, 두 자녀의 주일학교를 등록한 후 어린이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 후 공지사항 시간에 초등부 주일학교 교감이 안내했다. “교리교사 부족으로 유치부부터 초등학교 2학년은 집에서 가정교리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10명 남짓한 분교가 옆에 붙은 시골 성당도 아닌, 부설 유치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 도심 속 성당이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냥 집에 가 달라”는 말과 다름없는 안내에 마음이 허탈해졌다.

영유아교육세미나에서 “그동안 영유아 복음화가 이뤄지지 못했던 것은 영유아와 그 부모들을 유아실이라는 인위적 동굴에 가두고, 무관심하게 있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들과 부모는 좁은 유아실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본당공동체가 교육사목공동체로 탈바꿈되려면 부모 손을 잡고 성당 문턱에라도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유아실은 텅 빈 방이 됐다. 유아실이라는 인위적 동굴은 다소 널찍해졌지만,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영유아 신앙교육’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해야 할 교회의 과제라기보다는,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과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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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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