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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대성당에서 2022 한일청년교류를 진행하는 선교사 신은주씨. |
한국과 일본 가톨릭 청년들을 이어주는 가교인 ‘한일청년교류’. 이를 진행하는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신은주(크리스티나) 선교사는 선교회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이다. 2009년 입회한 그는 7년 반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다. 그중 3년간 양성 기간을 거친 뒤, 아르헨티나 빈민촌과 공소 등을 돌며 선교했다. 2017년부턴 한국으로 파견돼 선교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9월 4일 대전교구 송촌동성당에서 종신서원을 한다.
“보통은 10년 만에 종신서원을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좀 많이 늦어졌어요. 그래도 제겐 지금이 제때인 것 같습니다.”
신 선교사는 원래 교사가 꿈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길 원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수도자가 돼라”고 권유할 때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저는 부르지 마세요. 남자친구도 있단 말이에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신씨는 전공인 일본어를 살려 일본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인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도 병행했다. 그러던 중 도쿄대교구가 ‘평화 주간(8월 1~2주)’을 맞아 연 심포지엄에서 한국 대표로 발표를 맡았다. 청년 신자의 시각으로 한·중·일 관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그 일을 계기로 일본의 한 수녀원에서도 한일관계에 관한 생각과 체험을 나눴다. 나눔이 끝난 뒤, 서양인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일본에 머물며 한국 공동체 설립을 준비하던 에스텔 팔마 선교사였다. 에스텔 선교사는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공동체에 와서도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선교회 공동체는 신씨가 사는 집에서 가까웠다. 신씨는 ‘그냥 얘기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이후 선교사들과 식사를 같이 하고, 성지순례도 다니며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그런 와중에 계속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가톨릭 신자가 거의 없어 선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본에 와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정말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게 가능할까?’, ‘사도행전에 나온 그리스도인 첫 공동체 모습이 바로 이들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이제까지 제게 성경은 그저 하느님 말씀이 적힌 종이책이었는데, 드디어 성경이 ‘살아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다다랐죠.”
때마침 선교회 선교사들은 스페인에서 열리는 한 달짜리 피정에 신씨를 초대했다. ‘직장인 보고 한 달 동안 피정을 가라니, 일을 관두라는 거야, 뭐야?’ 속으로 코웃음 쳤던 신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정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54일 기도 끝에 답을 찾은 그는 결국 퇴사하고 피정에 참여했다. 그때 신씨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옛꿈을 떠올렸다.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은 성경 구절이 그의 마음을 확고하게 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그렇게 신씨는 32살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교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입회 13년 만에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다. ‘어떤 선교사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선물하신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