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첫 번째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성인으로 선포된 분들은 ‘사하라 사막의 은수자’ 샤를 드 푸코와 인도의 첫 평신도 순교자 데바사하얌 필라이 등 복자 10위였다. 성인 반열에 오른 분들 중에 특별히 20세기 순교자이자 언론인인 티투스 브란즈마 성인이 눈에 띄었다. 요즘, 가짜뉴스가 횡행하면서 진실이 위협받는 반면 탈진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공고히 하려는 메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는 시대에 언론인 순교자 브란즈마의 시성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주는 사건이었다.
1881년에 태어난 브란즈마 성인은 네덜란드 출신 가르멜 수도회 수사신부이며 신학자로서 가톨릭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였고, 교회언론의 고문으로도 활약한 만큼 교회언론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그러나 1940년 독일 나치의 네덜란드 침공 이후에 그는 나치의 선전선동에 반대하는 글을 대범하게 썼고, 나치의 압력에 맞서 가톨릭 교육과 가톨릭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그는 나치에 저항하는 내용을 더 이상 기사화하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942년 1월에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생체 실험을 당하였다. 그 다음 달에 그는 안타깝게도 61세에 독극물 주사로 사형되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지키려 하였던 진실과 정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언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려했던 성인은 언론인의 참된 정체성과 사명, 그리고 책임감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모든 언론인의 모범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티투스 브란즈마 복자 외에 신앙의 모범을 보인 9위를 성인 반열에 올리면서 “성덕은 영웅적인 몸짓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수많은 사소한 행위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2018년) 내용을 상기시켜주었다. 각자 주어진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충실히 실천할 때 누구나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브란즈마 성인은 언론인이며 신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인식했고, 그에 따른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진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대중에게 인식시켜주는 복음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브란즈마 성인은 탈진실 시대에 언론의 수호성인이나 다름없다. 정치인들의 거짓말, 기성 언론과 소셜 미디어의 가짜뉴스가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진실을 향한 성인의 투신은 모든 언론인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가짜뉴스는 공공의 적이며 사회의 악이다. 누구나 가짜뉴스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역시 불신과 대립, 두려움과 불안을 낳기에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권력과 언론, 언론과 시민,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 간에 진실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를 보니 세계 주요 40개 국가 중 5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곧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져 사회의 그늘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실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도 제2, 제3의 브란즈마가 나타나야 한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언론인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데 써달라며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그는 독립언론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인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폐간 위협까지 받았지만 용기와 굳은 의지를 보이며 사실을 계속 보도해왔다. 그가 서울에서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시그니스 세계총회 때 화상으로 연설을 할 예정이다.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도시가 폭격받고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있다는 뉴스를 삭제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사실 그대로 보도하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그와 동료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의 독립언론이 언론의 신뢰 회복에 충분히 보탬이 될 것이다. 그를 제2의 브란즈마 성인으로 추대하고 싶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