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성지순례를 하면서 오래된 성당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지에 세워진 옛 성당은 뾰족 종탑이 수직으로 우뚝 선 서양식 성당들이었습니다. 그 이국적인 이미지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100년이라는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 작업으로 성지 외에도 현존하는 다수의 옛 성당을 찾아 전 교구를 누비게 되었으며, 사시사철 변화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중입니다.
이 땅에 서양식 성당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오랜 박해 끝에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19세기 말입니다. 밀려오는 서구 열강의 힘에 못 이겨 종교의 문도 열리게 되면서 말이죠. 100여 년을 꼭꼭 숨어 기도하던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고, 신자 수의 증가는 급기야 성당 신축으로 이어져 1892년에 비로소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 약현고개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서양식 성당 건축은 당시 조선 교구를 담당했던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님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들이 신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신축에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하물며 100여 년 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성전 신축은 그야말로 온전히 신앙 선조들의 신심 어린 기도와 발품의 대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루 두 끼로 연명하면서도 옹기를 굽고 숯을 구워 한 푼 두 푼 엽전을 모았고, 벽돌을 굽고 나르고, 돌을 지고, 목재를 켜고…. 이렇게 피와 땀으로 지어진 성전이라 그런지 옛 성당에 들어서면 숙연함을 느끼기에 앞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속담에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옛 성당에 들어서면 왠지 하느님께서도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실 것만 같습니다. 신앙 선조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기도로 이루어진 성전이니 아무래도 성령이 더 충만하지 않을까요. 물론 가톨릭이야 세계 어느 성전을 가더라도 똑같은 전례를 따르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다르지 않으니, 무지하고 생뚱맞은 신자인 저의 편견일 겁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동안 성전 문을 걸어 잠갔고, 본당 신자 외에는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저도 사진 한 장을 위해 먼 길을 달려갔지만 아쉽게도 문밖에서 되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여건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고통은 남아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백신이요 치료 약입니다.
“피투성이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피와 땀으로 이 땅에 성전을 세우신 신앙 선조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