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요한 사도(보도제작부 기자)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에 출근하는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요즘과 같은 하늘은 우리나라에서 전처럼 흔하지 않다. 어쩌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원의 볕을 찾아 눕는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일부 유럽인들만의 얘기가 아닐지 모른다.
올해만 네 건의 큰 재해를 취재했다. 지난 3월 울진의 대형 산불, 8월 수도권과 충청권에 쏟아진 폭우, 그리고 지난달 남부지방을 할퀸 태풍 힌남노까지. 열흘 가까이 이어진 울진 산불은 강수량이 줄어 건조했던 탓에 더 큰불로 번졌다. 가물었던 봄이 지나고 찾아온 여름, 이번엔 너무나 많은 비가 한반도를 덮쳤다. 도로며 주택, 성당 할 것 없이 물에 잠겨 지금도 복구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자연재해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다. 평년 대비 강수량이니 해수면 상승이니 복잡한 얘기할 것 없이 우리가 직접 마주한 재해를 통해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재해 현장의 주민들은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후변화가 이전보다 큰 피해를 남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3만 5000여 명의 시민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기후변화와 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생태적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기후정의행진’에 나선 것이다. 천주교 신자들과 사제들도 광장에 모여 미사를 봉헌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붉은 제의와 옷을 입은 채였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외친 구호가 큰 울림을 줬다.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것. 지금 바로 생태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 없다는 호소다. 지구가 보내는 위험 시그널을 무시한 채 ‘이대로’ 살아간다면 내년엔 얼마나 더 큰 산불이, 얼마나 더 강력한 태풍이 덮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재난은 바로 당신을 찾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