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생활에서 힐링(healing)이란 외래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힐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인데, TV를 켜면 그 많은 채널을 일명 먹방 프로그램이 압도합니다. 먹는 것이야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지만 이렇게도 먹는 것에 열광한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먹는 것에서 힐링을 찾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사람마다 힐링을 즐기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번거로운 도심을 떠나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초록의 들판을 달릴 때면 더욱 즐겁고 신이 납니다. 더욱이 시골길은 교통 혼잡에서 벗어나 언제나 한적하고 넉넉한 길을 즐기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공소(公所)를 찾아가는 길이 저에게는 힐링이 되는데 대부분의 공소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소를 ‘신앙의 못자리’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공소는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초기 신앙생활이 바로 이 공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박해의 칼날이 시퍼렇던 시절에도 이곳에서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서양의 카타콤바(초대 교회 시대의 지하 공동묘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공소에서 숨죽여 기도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30년 전만 해도 1900여 곳의 공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점점 낡아가고 있습니다. 허름해진 공소들은 새로 지어지기도 하지만, 무너져 내리거나 아예 없어지기도 합니다. 관리가 잘되는 곳도 있지만 곳곳에 거미줄로 장식되어 방치된 곳도 많습니다.
한옥 공소에 특히 관심이 있어 가끔 찾아가 보면 지붕의 기왓장은 깨지고, 제대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채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고, 고상은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쥐똥이 범벅된 바닥에서 풀이 자라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런 곳이 어떻게 하느님의 집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성지순례의 활성화를 위해 안내 책자를 만들었던 것처럼 공소에도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공소는 조용합니다. 번거롭지 않습니다. 쾌적합니다. 단출해서 기도하기에 최적입니다. 주변에 음식점도 없고 커피숍도 없으며 화장실은 불편합니다만, 이왕 나선 순례길에 성지에서 비켜나 있는 공소들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신자들의 발걸음이 닿아야 귀중한 신앙 유산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신앙의 뿌리가 된 공소, 신앙 선조들의 열정이 담겨 있는 공소, 이러한 공소에서 두 손을 모으면 우리 몸에 힐링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