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100년 성당’ 사진전을 열었던 미술관을 통해서 통화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전화번호를 누르며 내심 전시회 개최를 논의하기 위해서 연락하셨나 하고 기대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서울주보에 실릴 원고를 청탁하시는데 바로 응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더 생각하고서야 수락하였는데, 워낙 글재주도 없거니와 신앙이 담긴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승낙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원고 한 편 정도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5편의 글을, 2학기가 개강하는 시점에, 더욱이 10월 개인전을 코앞에 두고 쓰자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동안 성지순례와 더불어 옛 성당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느꼈던 체험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소위 말하는 ‘나이롱 신자’입니다. 유년 시절엔 이모의 손에 끌려 성당에 나갔고, 입대 전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갔지만 음주가무에 빠져 예비신자 교리 도중에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군 제대 후 대학에 다니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성당을 제 발로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교리 공부하러 ‘나와라, 나와라’ 하시던 수녀님 손을 뿌리칠 땐 언제고 저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제 발걸음을 이끌어 주신 것이겠지요. 세례를 받고, 혼인성사를 통해 가정을 이룬 데다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아내(안젤라)와 아이들은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큰아이는 고등학생 때까지 예비신학생 모임에 다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성당은 그저 몸만 기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연구년을 맞아 아내에게 성지순례를 제안하였습니다. 2년간 아내와 성지를 둘러보면서 피 흘려 이룬 신앙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조금이나마 간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 신앙이 성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성지에 세워진 성당들을 카메라로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주어진 다섯 번의 글을 마무리짓습니다. 화가가 고뇌 속에 작품을 끝낸 것처럼 후련합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채워갈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서울주보에 글을 쓰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마음을 아마 하느님께서는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오늘은 직접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주님, 글을 쓰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부족한 신앙에, 무지한 글임에도 저를 온전히 받아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쩌면 주님께 드리는 고해성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