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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명에게 생명 주고 떠난 딸 가슴에 묻고 “그저 그분들이 건강하길”

뇌사로 인체조직과 장기 기증하고 떠난 이진주(엘리사벳)씨의 아버지 이윤식(엠마누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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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식씨가 인체조직과 장기 기증으로 100여 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간 딸 진주(오른쪽 상단)씨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승선 기자



갑작스럽게 뇌사에 빠진 뒤 이식이 절실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주님의 품에 안긴 청년이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인체조직과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진주(엘리사벳, 29)씨다.

“진주 친구한테서 울먹이면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듣는 순간 느낌이 오는 거예요. 급하구나.” 진주씨의 아버지 이윤식(엠마누엘, 춘천교구 초당본당)씨는 담담하게 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주씨의 갑상선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의식을 잃은 것은 지난 9월 13일, 지인들과 행복했던 저녁 풍경 속 딸의 웃음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씨는 강릉에서 딸이 있는 수원 성빈센트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마음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병원에 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딸이 뇌사에 빠졌다는 비보였다. 건강했던 딸이 뇌사 상태라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두 손 모아 기도도 하고 하늘도 원망하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씨의 간절한 바람에도 딸은 눈을 뜨지 못했다.

진주씨는 착한 딸이며 자상한 누나였다. 6살 때 어머니와 헤어져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3살 터울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며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려 애를 썼다. 내성적이어도 늘 “따뜻하게 챙겨 입으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건넸던 딸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 권유에 따라 동생과 함께 세례도 받았다. 이씨는 그렇게 착하고 남 돕길 좋아했던 딸이 가장 뿌듯해 할 마지막 나눔을 결심했다. 바로 인체조직과 장기기증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씨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기증할 수 있는 장기와 조직은 줄어갔다. 본래도 기증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이씨는 숭고한 나눔을 결정했다.

“진주 눈을 가지고 가서 (수혜자가) 이 세상을 밝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딸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진주의 눈을 통해 수혜자가 보는 세상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진주를 가슴 속에 묻었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살아 숨 쉬며 남들을 돕는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딸을 그리워하던 이씨는 참았던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진주씨는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주고 떠났다. 10월 15일, 뇌사에 빠진 지 한 달여 만이었다.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기증하지 못한 장기를 제외하고 피부와 뼈, 신경 등 인체조직과 안구까지 아픈 이들을 위해 나눴다.

이씨는 “딸의 생명나눔으로 그저 아픈 이들이 건강하게 살길 바랄 뿐”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장기 기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씨는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고 강요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다만 “흙이 되는 것보다 좋은 일 하시고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며 딸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진주씨는 인체조직과 장기 기증으로 100여 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하지만 장기조직기증을 사전에 희망한 이들은 224만 4520명(2022년 2분기), 전 국민의 4.3에 불과하다.



장기 기증 희망 등록 문의 : 1544-0606 한국장기조직기증원, 1599-3042 한마음한몸장기기증센터

김형준 기자 brotherju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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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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