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일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으라면 2014년, 그해 여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14년 1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시복식의 행사 연출과 운영, 무대 제작과 의전을 맡게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에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때부터 시복식이 거행되는 8월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먹고 잘 틈도 없을 만큼 긴박하고 고단한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계속되는 회의와 일정들은 체력의 한계와 압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여정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교황님이 방한하시고, 그 교황님께서 집전하시는 시복식 행사의 총괄 감독이 아들이라는 사실에 한없는 감사와 자랑스러움을 느끼셨습니다. 교황님의 방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7월이 되자, 긴장감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기 암 판정을 받으신 것입니다. 야속하게도 의사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습니다.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점차 깊어졌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아픈 어머니의 곁을 지켜야 할 제가 시복식 준비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을 볼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8월 12일, 광화문광장에 대형 십자가가 세워지며 본격적인 시복식 준비가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습니다. 마음이 무너졌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교황님과 수십만 명의 초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식이 열렸습니다. 역사적이고 거룩한 순간이었고, 다행히도 시복식의 모든 여정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동조차 힘겨웠던 어머니는 끝내 시복식에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10월, 어머니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던 하느님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가장 갈급한 순간에 어머니를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아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일을 하라며 재촉하셨던 어머니.
하느님은 저에게 10년 동안 서울대교구의 사제 서품식을 진행하게 하시며 저를 단련시키셨고, 어머니의 인생 끝자락에 교황님의 방한을 준비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충만한 기쁨을 선물하셨습니다. 지독하고 치열하게 지켜낸 저의 소명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지키기보다는,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맑은 날이든 궂은 날이든 개의치 않으시며 매일 새벽마다 감곡성당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제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평생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가 여전히 저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