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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 강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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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응으로 ‘미사일 1만 발’을 확보하자는 군사 전문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소환하며 ‘미사일 1만양탄설’(一萬養彈說)을 주장했는데, 요지는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대응책으로 제시하는 ‘한국형 3축 체계’ 구축과 함께 “10년 안에 강력하고 정교해진 미사일 1만 발을 확보하길 제안한다”는 것이었다.

학계에서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외적에 대비해 10만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10만 양병설’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다. 전에는 어린이들이 보는 역사책이나 학습만화에서도 율곡과 충무공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이 자주 등장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들으면서 임진왜란 등을 겪은 이유가 조선의 ‘안보 불감증’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북한 당국도 군사력 강화의 목적을 안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향한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사일 발사 시험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가 아무리 귀중해도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으리. 우리의 총창 우에(위에) 평화가 있다”라는 북한 노래 가사에서처럼 북한은, 그리고 남한과 다른 나라들 역시 강력한 국방력을 통해서만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가속화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은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의 전형이다. 안보딜레마의 맥락에서 보면, 한 국가가 안보 불안을 느껴서 군사력을 키우면 대립의 상대방도 군사력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적대적인 쌍방의 안보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자국의 군사력은 방어용으로, 상대방의 군사력은 공격용으로 규정하면서 딜레마는 심화된다.

첨단무기를 아무리 많이 갖춘다고 해도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를 보면서도 평화를 염원했던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 간의 대립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치는 ‘뱀처럼 영리하라’ 하고, 도덕은 ‘비둘기처럼 순진하라’고 덧붙인다. … ‘정직은 어떠한 정책보다도 더 낫다’라고 하는 명제는 논박을 받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필수 불가결한 정책 조건으로서 간주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현실주의의 우상’을 넘어서 새로운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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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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